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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6장(5)

 

다시 이야기를 줄거리로 돌립니다. 우리는 다코우 승원을 떠나 귀로에 올랐습니다.

얀탄에서 다추안 대사와도 작별하고 때를 재촉하여 챰비 계곡으로 돌아왔습니다.

꼭 24일 만이었습니다. 곧바로 린포체 대사를 찾아뵙고 경과를 낱낱이 보고했습니다.

 

린포체 대사의 첫 물음이 "토운라 대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였습니다.

"그분은 선생님 다음으로 저에게 정다운 스승이고 벗입니다."

"그에게서 벌써 소식이 왔다네. 그의 말로는 자네는 텔레파시의 명인이라는 것이다.

자네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더군."

 

"저도 그렇습니다." "나도 기쁘네" "그런데 어떻게 그리 빨리 아셨나요?"

"아아, 우리들 사이에는 소식이 빠르지.

지금 자네가 하는 일도 아주 짧은 시간에 멀고 먼 곳까지 알려진다네."

"하긴 저도 그러리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밤늦도록 그간의 일들과 내가 배운 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사께서는 나의 여행이 보람이 있었음에 만족해 하시면서

"이번 여행이 성공적이어서 나도 기쁘네. 그러나 그런 것은 '참' 그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지.

밀교 과학의 기법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진리는 그런 것과는 별개의 있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해"

"네, 알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것이 분명히 깨달아집니다.

그런데 산속에 숨어있는 은둔자들은 어떤가요, 그들은 진리를 찾은 분들인가요?"

 

"이 사람아, 그렇지 않아. 산속이나 바닷가에서 칩거하고 인삼을 먹거나

온종일 배꼽에 정신을 집중한다고 해서 '참'이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야.

또 세상에서 떨어져 있다고 해서 알아지는 것도 아니야.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세상이니까.

홀로 있음이란 없는 것이야. 그것은 그저 마음속에서 지어낸 것, 커다란 환영일 뿐이라네.

그런 허위를 깨닫게 하려고 자네를 예까지 오게 한 것이야.

그래야 비로소 '참인 것'을 알지. 누구나 자기 스스로 허위를 알게 되지 않고는

남이 알게 해줄 수는 결코 없지. 나도 못해.

 

자네는 오랫동안 틈틈이 밀교 공부를 해왔지.

그러니까 더욱 나는 자네가 '참인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해탈해 주기를 바란다네"

대사는 차츰 깊은 고요 속으로 드시면서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깨달음은 단순한 명상이나 암시에 의한 신앙이나 어떤 신비한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미래나 과거에서 얻어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과거는 기억이고

미래는 공포가 섞인 희망에 불과하니까.

그런 것은 모조리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야. 진리는 마음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럼 어찌하면 진리에 이를 수 있을까요?"

"나로서는 진리에 이르는데 방해가 되는 미로(迷路)를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들을 샅샅이 알았을 때 진리는 너에게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리가 정말로 내 것이 되며 남의 것이 되지 않는다.

남의 것을 따라가본들 그것은 흉내에 불과하다."

 

"또한 단순한 분석으로 진리가 깨달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과거를 들추어보는 것뿐이다.

단순한 분석의 과정이 거짓의 과정임을 알면 너는 그것을 놓아버리게 되고,

그러면 그것은 다른 거짓 과정들 모두처럼 너의 마음 속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너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모두 죽은 것뿐이다. 그것은 살아있질 않아.

진리는 모든 순간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야.

진리는 발견되어질 것이지 단순히 믿어야 할 것이 아니며

인용할 것도 아니며 마음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싱싱하게 살아서 행동하는 것, 싱싱하게 지금 살아 있는 것, 그것이 진리이다.

'나'의 생명 그것, 생명의 모든 순간순간을 사는 것, 그것이 진리이다.

이것을 알려면 모든 거짓에서 벗어나 마음으로 사랑을 가득 채우면서

스스로 경계하고 스스로 깨있어야 해.

 

대개의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고 있으려고는 안 하고

누워서 세상을 피하고 문제에 부딪치려고 하지 않는다. 비바람을 피하려고만 해.

대체 비바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인간관계가 아닌가?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그 관계를 의식해야 해.

만약 내가 그대를 물건을 다루듯 한다면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그러나 서로 이해할 때 비로소 참된 관계가 생긴다.

그때 비로소 자유가 있을 수 있고 자유 안에서만 진리는 계시된다.

만약 네가 나를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은 싫어한다 할 때 너는 진리를 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내게는 친절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불친절하다면 너를 친절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모순이 아닌가?"

 

"이런 말은 지금까지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못했겠지. 그것은 네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상념, 동기, 감정, 소원과

그것들이 생기는 원인과 방식을 잘 모르기 때문이야.

'작은 나'(小我)에서 나오는 것을 모두 제거해야 비로소 진리가 참으로 알아지는 법,

진리가 자기 안에서 꽃피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그런 거짓된 것이다.

너의 행위가 진리와 모순될 때 어찌 진리를 말할 수 있겠는가"

 

대사는 더더욱 엄숙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만약 자기의 체험이라는 것이나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으로 지배된다면

그대는 '나'의 마음을 넘어서 있는 것을 나타낼 수 없다.

다만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밖에는 표현하지 못한다.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본래 참이 아니다.

그러나 너의 행위가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나온다면

너는 진리를 나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말을 끊으시더니 아주 인자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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