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6장(7)
나의 생각은 크나큰 침묵 속에 그대로 녹아들고 그 속에서 창조적 상념이 솟아 나왔습니다.
나의 혼란된 자아의 생각들이 무(無)속으로 녹아내림과 아울러
나는 단순한 정신적 관념이 아닌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의 관념을 넘은 완전한 사랑이 넘실대는
가없는 고요에 나는 이르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남의 손으로 잠재워졌을 때와 같은 죽은 고요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내 뜻으로 지어낸 고요도 아니었습니다.
일체의 혼란된 상념이나 어지러운 사고작용마저도 휩싸여들어 멈추어버리는 고요,
그 고요 속에서 어떠한 외적인 것에도 이미 묶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끝없이 한결같이 있는 창조의 근원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과 '하나'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과 나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그것을 나에게서 빼앗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일체의 창조된 것 속에 있는 창조의 힘 그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은 사랑이며, 일체는 사랑인 신과 하나이며
신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침묵을 깨트린 것은 린포체 대사였습니다.
"이 사람아, 밖에 나가 해짐을 보기로 하세" 바라는 바였습니다.
몸이 떨릴 만큼의 감격을 맛보지 않고 이곳의 해짐을 본 일이 없었습니다.
"저녁마다 해짐의 모습이 한 번도 같은 법이 없군요."
"그럴 수밖에. 나는 오랜동안 여기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아왔지만 한 번도 같은 일이 없었지.
안 그렇겠는가? 이 사람아, 그것은 하나의 '한 생명'의 변화가 아닌가.
그대와 나도 같은 생명이지. 다만 다른 것은 '변화' 그것일 뿐이야.
이 변화만 알면 모든 것의 뒤에, 안에, '한(신)'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야"
대사님의 말씀처럼 나에게 속속들이 스며드는 울림은 없습니다.
그 울림은 그대로 나를 밀어 올리는 그런 울림이었습니다.
그 울림에는 나의 성질을 송두리째 흔들고 바꾸어놓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내게서 일어나는 것은 어설픈 지적 이해가 아니라
보다 깊은 깨달음이고 변성(變性)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근원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는 만족했습니다.
만족하여 이제 다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더는 이것저것 찾아다닐 것도 애쓸 것도 없습니다.
진리란 과연 무엇이냐고 자꾸만 두리번거리던 나의 탐구도 고투도 끝난 것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진입니다.
이제부터야말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그대로 나에게 다시없는 배움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에는 이것이야말로 '참'이라고 여겼던 것이 허상(虛像)이었음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모든 거짓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지지 않은 것, 창조되지 않은 것'만이 '참 있음'이고 창조하는 자입니다.
그로부터 나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들은 하나하나가 놀라운 일들이었고
그 까닭을 분명히 모른다 해도 그것에 미혹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 배후의 근본원인은 하나이며 나 이것이 그것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타나는 것은 나타나는 것이고 그밖에는 아무것도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은 곧 무한이니 무한한 것에서 떨어져 따로 유한한 '참있음'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그저 보는 눈의 망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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