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마음과 몸의 신성한 치유 1장(7)과 표현
1 - 7. 속설(俗說)은 바깥에서 옵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오는 속설로는 진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해서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마세요.
진리는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며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원한 나의 신성 안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몸의 신성한 치유 1장(7)]
표현되는 글은 마음과 몸의 신성한 치유 글을 풀이한 글이 아닙니다.
글을 좀 더 깊이 소화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의 과정입니다.
그 점 참고 바랍니다.
1. 마음 챙김
'속설은 바깥에서 옵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오는 속설로는 진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해서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마세요.
진리는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며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불가에서는 '오직 모를 뿐'이란 표현을 쓰고는 하지요.
진리에 대하여 '오직 모를 뿐'이라는 규정짓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수행할 때,
그 사람은 더 진리에 가까운 상황으로 가게 된다 하겠습니다.
자신이 가진 온갖 외부적인 지식(속설)의 틀을 내려놓고
진리 탐구와 수행을 하려는 자세이기 때문이라 하겠지요.
진리란, 자기의식 너머의 영역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의식을 나투어낸 영역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직 모를 뿐'이라는 열린 마음 자세로 노력할 때,
오히려 더 큰 것을 깨우치게 될 확률이 많다 하겠습니다.
2. 명상
'나는 영원한 신성 안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이란 표현은, 그리스도를 뜻한다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란 인간 안에 내재된 신의 영을 뜻하며, 신성을 뜻한다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예수란 분이 자기 안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발현하셨다는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라 표현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다 그리스도인 것이지요.
왜냐하면, 모두 안에 신성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재된 신성을 제대로 발현하면서 살아가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라 하겠습니다.
영성 차원에서는 가장 위대한 기도란, '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표현도 있지요.
자신의 실존을 제대로 인식하고 내면에 각인하는 것이
자신의 의식 작용에 크나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표현된 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불가 쪽에서는 '나는 부처다.'라는 수행도 있고,
영성 쪽에서는 '나는 신이다.'라고 되뇌는 수행도 있고,
그러한 맥락차원에서 '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표현과 수행을 생각하면 되리라 봅니다.
'영원한 신성 안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신의 영, 신성)는 신성 안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항상 존재하고 있다고 표현되었습니다.
영성의 꽃, 내재된 신성이 발현되어 피어나는 꽃의 시기는 사람들마다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젊은 나이에 꽃이 피어나는 사람도 있고, 나이가 좀 들어서 피어나는 사람도 있고,
각 사람마다 신성의 빛이 제대로 발현되는 시기들은 다양하다 하겠습니다.
중요한 점은, 인간의 에고가 아무리 두터워도 신성의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또 때가 되어야 꽃이 피어나듯이
인간에 내재된 신성의 발현도, 때가 되어야 그 꽃이 피어나게 된다 하겠지요.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하여 신성의 발현을 이루고자 하는 그 신성한 흐름을
에고는 거스를 수가 없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사자의 입에 들어간 먹잇감으로 비유하여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요.
즉, 신(부처)의 뜻 가운에 들어간 신성 발현이 시작된 사람은
그 신성의 흐름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안에 점차로 흡수되어 간다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개인적으로는 살아온 과정들을 보면서 수긍하게 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3. 마음공부
이러한 내용들을 실생활에 적용하려면 어떠한 방향성이 좋을까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사람들은 보통 선입견을 자기도 모르게 형성하고 있다 하겠지요.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야'라는
자신만의 규정 같은 것을 갖고 있기 마련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것이 전혀 없다면, 에고의 틀이 온전히 사라진 완성된 사람이라 하겠지요.
대부분 그런 자기규정이 두텁든, 얇든 다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가족 간에도 자신만의 틀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라보고 생각하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생각 틀에 잘 맞지 않으면 내면에서 반발심이 일어나기 쉽고,
불화의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하여 '나는 저 사람을 잘 안다고 규정짓고는 했는데,
오늘부터는 저 사람에 대하여 진정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인정을 하고 대하여 보자'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볼 수가 있겠지요.
결혼도 하고 그렇게 상대방을 잘 알면 왜 이혼이 비일비재하고 그렇겠습니까?
그런 이유는, 자신이 상대방을 잘 안다고 착각 속에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봐야겠지요.
부부로 살면서도, 실제로는 진정하게 상대방을 몰랐다는 것이지요.
부부 사이뿐 아니라, 가족 간이나 친구, 동료 등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라 봅니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모르면서, 상대방을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기 생각의 틀로 상대방을 규정짓지 않는 노력은
사람 사이의 평화로움을 위한 좋은 방편이 된다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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