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15장(3)
"네." 나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제,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과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는 자 사이에 존재하던 자기 분열이 끝장났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자신에게 알려진 것 안에서만 기능할 수 있을 따름인데,
알려진 것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결코 알아낼 수 없습니다.
미지의 그것을 마음이 결코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될 때,
마음은 생각들을 마구 지어내기를 그치고, 자신을 넘어서 있는 것에 스스로를 열게 됩니다.
편협한 마음은 보잘것없는 마음이며, 그 마음이 신에 대해 지어내는 관념도
자신의 한계에 틀 지워져 있어 보잘것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네 마음이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지 않니?"
"네." 나는 대답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고요한 느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글쎄." 그는 말했습니다.
"진리란 시간에 속해 있는 문제가 아니야. 진리는 지금 이 순간 있는 것이고,
지금이 아니라면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지.
그리고 이것은, 마음을 억지로 고요하게 만들 때가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 고요해졌을 때라야 비로소 깨달아질 수 있는 것이란다.
마음이 강제적으로 스스로를 고요하게 만들려고 할 때, 마음은 계속 갈등을 겪게 되지.
그러나 스스로를 이해함으로써 고요해지게 되면, 그때 진리가 들어서게 된단다.
이제 생각과 생각하는 자, 경험과 경험하는 자를 둘로 나누어 보던 이원성은 존재하지 않고,
이원성도, 저항도 없는 상태 속에서 경험하는 상태만 있을 따름이란다.
예수께서는 이를 이런 말씀으로 표현하셨단다.
'내 안에 언제나 계신 분은 바로 아버지이시다.
그분께서 일을 하고 계실 따름이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이성의 가장 높은 차원에서 신에 대해 이렇게 추리하고 그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겠지.
신은 본성상 무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 바깥에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고,
그분은 모든 곳에 있어야만 하며, 그분의 실체 말고는 다른 실체도 없고,
그분의 생명 말고는 그밖에 다른 생명이란 없으며, 그분을 벗어나서는 어떤 창조성도 존재할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분은 무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도 반드시 멈추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이 추론의 과정에서조차 마음은 여전히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네.
이성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은 여전히 기능하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있어서, 마음 너머에 있는 진리를 드러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가장 높은 차원의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멈추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생각은 결코 진리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자기를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명상의 시작이란다.
여기에는 어떤 특별한 기술도, 어떤 특별한 자세도, 어떤 특별한 호흡법도 없단다."
"자신을, 곧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실재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은 것이라 실재성(reality)이 없단다.
이제 너는 이 점을 이해하게 되었단다. 그렇지 않니?"
"네." 나는 말했습니다. "이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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