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15장(5)

 

 

일어나 보니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나는 내 변화 상태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 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는 직접, 나에게서 나오는 이전보다 훨씬 밝은 빛을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가 의식적인 자각(consciously aware)의 상태에 있었던 것처럼,

나도 의식적인 자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탄이란, 자아의 바깥에 존재하는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자아라는 사탄(the satan of self)이었습니다. 자아는 언제나 앞에 나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대가 자신을 들여다본다면, 그리고 그대가 생각의 과정을 자각하고 있다면,

언제나 앞에 나서기를 원한다는 것은 바로 자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대가 자아를 알게 되면(know),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자아로부터의 자유가 찾아옵니다.

"내 뒤로 물러서라. 사탄아."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버지 홀로 실재이시다.

 

그렇습니다. 자아가 바로 자신을 속이는 핵심 요소이었으며,

이 점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우리 둘 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 친구의 지혜는 완전했으며, 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유는 어떤 자극이나 자기 최면의 결과가 아니었으며 다만 이해를 통해 오는 자유였습니다.

 

점심을 들고 난 후, 우리는 등산화를 신고, 니이블룽 리충 계곡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계곡은 우리가 있던 곳의 정면 오른편에 있던 것입니다.

이 계곡에 있는 빙하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몇 마일 이내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얼음이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만들어내는 굉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빙하의 가장자리에 도착했을 대, 우리는 거대하게 갈라진 틈들을 보았는데(crevasses),

말 한 마리가 지나가기에도 충분한 크기였습니다.

 

많은 산들이 잠사르를 에워싸고 있었으며, 내 친구는 다양한 봉우리들을 가리키며

그 높이를 자세하게 말해주었는데, 20000~24000 피트(6096-7315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습니다.

자연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전혀 꾸미지 않습니다.

어떤 서구인도 눈길을 둔 적이 없던 그 아름다움을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들에 피어있는 백합들을 바라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영화를 입은 솔로몬도 여기 있는 이 꽃들 중 하나보다도 차려입지는 못했다."

 

내 친구는 여기 있는 산들을 올라갔을 때의 경험들을 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는 성취감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최고의 등산 코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나 역시 거기를 오를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꼈는데, 이제껏 나도 등산을 많이 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전에 기억하기로는, 알프스 남쪽을 하산할 때,

나는 지름길을 찾아 빨리 내려가야지 생각하며 길을 찾아 내려가고 있었는데,

그 길로 내려가다 보니 도저히 내려가기에는 불가능한 곳에,

얼음과 암석의 절벽의 낭떠러지에 내가 서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되돌아가느라 몇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다른 사람들을 많이 염려하게 만들었습니다.

난관에 부딪힐 때의 느낌은 직접 그것을 겪어봐야 비로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저 봉우리는 높이가 얼마나 되지요?" 나는 물었습니다.

"23000 피트(7010m)란다." 내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 곳을 오를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물었습니다.

(등산에 대한 욕심이 다시 나를 휘어잡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는 말했습니다.

"이 봉우리는 이제껏 그 누구도 오른 적이 없다네. 몇몇 사람들이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했지."

"그렇다면 저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데요." 나는 말했습니다.

 

"지금은 말고 나중에는 시도해볼 수도 있을 걸세."

이제까지는 등산가들의 모든 시도를 좌절시켰던 높이 솟아오른 그 봉우리에

그이도 역시 도전해보겠다는 시선으로 그 봉우리를 바라보며 그는 대답했습니다.

 

내려오는 길 내내 내 마음 안에서도 도전하고픈 생각이 계속해서 솟아났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6인치 망원렌즈가 장착되어 있는 내 카메라를 들고 와서 그 봉우리 사진을

많이 찍어보겠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우리는 돌출되어 있는 곳을 찾아내서

그 버섯모양으로 생긴 봉우리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의 쌍안경을 통해서 정상 부분이 버섯 모양처럼 생겼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버섯 모양으로 생긴 그 부분 위로 어떻게 올라서느냐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었습니다.

"저것 때문에 이제껏 시도했던 모든 사람들이 실패한 거라네." 그는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는 꼭 시도해 보아야겠다는 욕구가 더 강해졌습니다.

나는 그대가 등산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등산하고 싶은 마음이 그대의 피부 밑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면,

그것은 그대를 사로잡는 충동이 되어 계속해서 산에 오르길 시도하고 또 시도하게 만듭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