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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16장(4)

 

 

"네." 나는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세계가 왜 혼란스러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세상의 혼란을 없애는 그 작업은 나와 너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혼란의 원인을 자기 바깥에서 찾으면 안 된다."

 

"네." 나는 말했습니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멈출 때라야, 비로소 창조성(Creativeness)은 경험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자신 안에 있는 모든 모순과 한계와 더불어 스스로를 이해하게 될 때라야

비로소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 너머에 있는 그것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무한하신 '하나'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무엇인가로 되고 싶어 하는 욕망(desire)이 있을 때,

어떤 결과를 이루고자 하는 바람(desire)이 있을 때, "

그는 설명해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모순이 있기 마련이고, 그리고 모순이 자리 잡고 있는 한,

고요한 마음이란 있을 수가 없지.

그런데 고요한 마음이란 생명(Life)의 중요성을 총체적으로 깨닫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거든.

그러므로 시간의 결과물인 생각(thought, 역자 주: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욕망과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생각이 일어나게 된다고 통찰한 바 있음.

그러므로 어떤 생각이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무엇인가에 대한 욕망 혹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음.

그러나 이 관찰에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생각과 생각하는 자를 분리해서 보려는 성향이며,

이를 왜 경계해야 하는가는 스스로 알아내야 할 성질의 것임.)은,

 

영원한 그것(the Timeless)을 결코 깨달을 수 없고, 시간을 넘어서 있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네.

생각의 본성은 과거와 미래에 속해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는 현재를 충분히 자각할 수 없는 것이야.

또 그렇기 때문에 지금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완전하게 자각할 수 없는 것이지.

 

왜냐하면 시간의 산물인 생각은, 자신과 반대되는 것을, 자신과 모순되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직접 창조하고 있는 그 모든 문제들을 제거하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생각은 언제나 어떤 목적을 그저 추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생각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생각과 생각하는 자가 동시에 끝장이 나야지만,

실재는 비로소 깨달아질 수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제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소위 영적이라 부르는 것들을 수단으로 해서

행복을 추구하고 있을 때, 저는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군요.

또한 제 자신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착취당하고 하는 행위의 원인이라는 점을 알겠습니다.

나 자신 바깥에 있는 행복을 추구하게 될 때,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또는 영적이든

어느 차원이든 상관없이, 나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는 자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런데 착취하는 자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연의 변덕으로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그 착취자는 다만 물질적, 정신적, 영적인 만족을 얻고자 내 욕망들이 모인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나 욕망이 날뛰는 곳에서 자유란 존재하지 않으며,

착취자는 만족을 느끼기 위해 욕망을 추구하나 결코 그것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렇단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옳은 말이지. 그런데 거기에는 좀 더 살펴봐야 할 미묘한 문제가 있단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저항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데,

그것들은 그들이 악이라고 부르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결과이지.

그리고 어떤 이들은 악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악을 파괴시켰다고 생각한단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이 사회의 악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써 악을 없애려 한단다. 그러나 그들은 악을 더할 뿐이야.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도 악을 창조하는 일에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릇된 방법으로는 결코 올바른 행동이 자리 잡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살인자들을 그저 똑같이 죽인다고 해도 평화는 결코 오지 않는단다.

그렇게 한다면, 너 역시 살인자가 된다는 것이거든.

 

우리가 서로를, 집단에 따라,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른 종교에 따라,

서로 다른 사상에 따라 편 가르기를 계속하는 한,

거기에는 언제나 공격하는 자들과 방어하는 자들이 생기기 마련이지.

그리고 방어하는 자들은 기회가 되면 공격하는 자들로 변할 테고.

그동안 무지와 전통에 따라서, 자신이 직접 습득한 지식에 따라서, 사상에 따라서,

다른 이들을 추종하는 것에 따라서 자신이 얼마나 묶이게 되었고

어떻게 조건화되었는지를 사람이 스스로 알아보기 전까지는, 평화와 자유란 결코 있을 수 없단다."

 

"악은, 또 다른 악으로써도, 그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결코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렇게 하면 사람은 더욱더 공격적으로 변하고, 더 많은 악이 생겨날 뿐이지.

이러한 분열(division)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때라야

비로소 평화는 사람과 세상에 깃들게 되는 것이다.

 

악 혹은 다른 무엇을 공격한다고 해서 그 결과로 평화가 올 수는 없는 법이지.

또 평화는 전쟁을 통해서도 결코 오지 않는 것이다.

평화는 오로지, 전쟁의 원인들, 즉 공격성, 민족, 서로 다른 종교로 나누는 태도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다 이해되고 나야지만, 찾아올 수 있는 것이며, 그래야 그것들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면 인간의 마음으로 창조되지 않았으며 다만 영원하고 항상 현재에 머물고 있는,

사랑-신-평화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너는 평화를 창조할 수 없단다.

사랑-평화는 세상이 있기 전부터 존재해 왔던, 모든 것을 하나로 묶고 있는 통일성 기초 원리이자,

지금 존재하는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이지.

 

'내가 바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하나"이다. 나 말고는 다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I am the Only One, there is none besides Me)

 

"영성(spirituality)이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으로서, 그 안에는 어떤 차별도, 어떤 분열도,

지위나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욕망도 없단다. 무지의 그물을 벗어나 자유롭게 남아있고자 한다면,

너는 반드시, 모방이나 전통 또는 자신보다 모르고 있는 권위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자기 자신만의 생각의 자유로움을 지속시켜 나가야만 한단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나무는 이기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자신의 환상과 두려움과 모순 등,

이 모든 것들이 뒤얽혀 있는 가지들이 뻗어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그렇게 하면서 점점 더 무책임하게 변하지.

이로써 더 큰 혼란과 무질서에 이르게 되는 것이란다."

 

"이해와 조정(adjustment)을 통해서 나오는 의식적인 행동은 맑은 생각에 이르게 한단다.

또한 맑은 생각은, 더 이상 그 어떤 공격성이나 이기심이나 미움이나 살해도

그 안에 품고 있지 않는, 맑은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지.

그때야 비로소 언제나 현재에 그저 있는 현존에 대한 깨달음이 깃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 안에는, 어느 경우에라도 결코 자신을 개인, 민족, 집단 따위 등으로

나누어 대립되게 하는 성향을 그 안에 품고 있지 않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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