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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16장(2)

 

 

"예." 그의 말에 동의하며 나는 말했습니다.

"지금 제 마음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화되고 있으며,

제가 갖고 있던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저 스스로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아무런 비판이나 검토도 없이,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들과

무엇인 영적이고 영적이지 않은지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그러한 것들이 단지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어떤 생각은 두려워하고 어떤 생각은 검토하지 않은 채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성(spirituality)은 사랑(Love)이자 지혜(Wisdom)이며 친절(Kindliness)입니다.

마음 내부의 갈등이 이해를 통해서 사라질 때라야, 사랑과 지혜와 친절이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 그는 말했습니다. "이제껏 너는 숱하게 단정들(conclusions)을 지어왔고,

그것들을 자기 주위로 쌓아 올렸단다. 이제껏 너는 이렇게 내린 결론들을 이해라 불러왔지만 말이야.

그런데 이제 너는, 이러한 결론들이 참된 이해에 있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것들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방해물이 될 뿐이지."

 

"그동안 너는 두려움에 떨면서 종교 예식에 매달려 왔고,

예식을 통해 두려움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지.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스스로 만들어낸 조건에 더 갇히게 될 따름이었지.

네가 내린 결론들은, 스스로를 가두는 벽이 되었고, 결론들을 내릴 때마다

자신의 주위에 더 많은 벽을 쌓아올리는 것이란다.

너는 스스로에 의해 묶여 있고 갇혀 있었던 것이지.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너는 관념이라는 벽을 세우기도 하고, 허물기도 하고,

그것들끼리 서로 비교해보기도 하고, 억누르기도 하고, 새롭게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할수록 더 큰 혼란만 만들어낼 뿐이었지.

 

그런데 사실 그 혼란은, 두려움과 모순에 가득 차 있으면서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있는 자아가 투사된 것일 따름이야.

자아를 이해할 때에만, 자아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때에만,

비로소 스스로를 가두는 이러한 조건들은 사라질 수 있단다.

오직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만 자아는 자신이 만든 환상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거란다."

 

"자아란, 다만 기억들과 경험들과 제한들과 믿음들과 적응기제(conformities)들의 다발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이러한 자기 폐쇄(self-enclosure)를 벗어나게 하는 자유가 찾아온단다.

자아가 왜 자신이 허우적대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때, 마음의 동요는 정지하게 된단다.

그리고 이 고요함 속에 실재가, 생명(the Life)이 있다네.

그 생명은 영원하며 드넓고 무한정 자유롭게 기능하고(operation) 있지.

 

일단 의식이 자유롭게 풀려나면, 의식은 자신이 시간과 기억과 경험과

과거와 미래의 환상을 받아들일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자유로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현재를 순간순간 살아가는 그 찰나에서만 자유는 존재하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생각의 환상을 순간순간 알아볼 때, 환상은 본래 무(無)의 상태로 사라져 버리고,

이러한 알아차림(awareness) 속에서 실재는 그저 있게 될 따름이지.

그리고 바로 여기에 창조성(the Creative)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란다."

 

"자아가 스스로에게 묶여있을 때, 자아는 자기 바깥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신에게 기도하게 되지.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믿음에 묶여 있는 자들이, 결코 신을 알 수 없게 되는 이유라네.

알려지지 않은 그것(the Unknown)을 말이야.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 바깥에 있는 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들은 결코 신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자들, 그들도 역시 다른 형태의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란다.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이 믿음도 역시 알려지지 않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를 믿고 믿지 않고는, 조건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거든.

 

믿음이란 자아에게 알려진 것, 자아가 알고 있는 것의 결과란다.

믿음 역시 알고 있는 것, 기억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거든.

하지만 기억은 결코 알려지지 않는 그것을 깨달을 수 없단다."

 

"그렇다면 기억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겠지. '그래, 나는 신을 알지 못해. 그것은 알 수 없는 무엇이지.'

이렇게 기억은 알려지지 않는 그것을 개념으로 창조하고는,

알려지지 않는 그것을 경험하기 위한 수단으로 창조한 개념을 믿어버리게 된단다.

그러나 그건 아무런 실체가 없는 것이고,

그저 정신으로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라는 것을 너는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자신이 지어내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라야

비로소 알려지지 않는 것이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은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결코 바깥을 통해서는 오지 않는다."

 

"이제 분명히 알겠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무엇인가에 대해 결론들을 내린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는데 있어 오히려 걸림돌이 됩니다.

자아는 그 결론들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자아의 중심 이미지가 되어 버리고,

자아는 환상 속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눈이 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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