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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17장(6)

 

내 친구와 나는 그의 안식처로 갔습니다. 우리는 십일 동안 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전에 이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씻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물이 흘러들어 오고 있는 수영 연못(swimming pool)으로 들어갔습니다.

물은 상쾌하고 따뜻했으며, 우리는 물이 들어오는 곳에서 몸을 씻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을 회관으로 내려갔습니다.

 

내 친구는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여기서(at hall) 우리에게 준 음식부터 좀 들어야겠구나."

그래서 우리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놀랍게도 음식 중에는 구운 닭고기와 구운 감자도 있었는데,

이것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참으로 맛있었습니다.

 

내 친구는 티베트말로, 전에는 결코 정복된 바 없는 그 산의 정상에

우리가 어떻게 도착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가 설명할 때 주위는 지극히 고요하여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며,

가장 어린 아이도 뉘블룽 리충을 오르내리는 그 이야기에 깊이 몰입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 친구의 목소리는 참으로 근사했으며, 그대도 거기에 있었다면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내 친구가 말할 때, 그 목소리는 그대를 매혹시킬 것입니다.

 

티베트 여자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남자들과 동등하며,

여자들 중 대부분이 훌륭한 산악인이기도 합니다.

여자들 역시 쟁기질을 하고 땅을 파고 물을 나르고 나무를 합니다.

집 안에서건 집 밖에서건 여자들은 남자들만큼 모든 면에서 능숙하며,

오히려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관해서는 남자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어린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가릴 것 없이 모든 이들은 보리 맥주(chang)를 한껏 마셨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즐거움에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싸우는 일은 좀처럼 볼 수 없고, 술을 마실수록 그들은 더욱 즐거워집니다.

 

티베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좋아합니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에 소녀가 임신을 하더라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혼 유무와는 상관없이 일정한 연령에 이른 여자에게 아이가 없는 모습을

그대는 좀처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보다 행복한 민족은 세계 다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겨울에는 특히 가혹할 정도인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기온은 영하 상태로 유지됩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이 기후 조건에 적응하였습니다.

이들은 다른 곳의 날씨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며

그래서 이곳 날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내 친구는 잠사르의 왕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그를 존경하였습니다.

그가 지닌 지혜와 사랑과 이해가 그 비결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참으로 진리의 화신이었습니다.

 

모든 조건에서 자유로운 그의 마음을 통해서

진리는 어떤 방해나 제한도 받지 않고 몸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피곤한 줄 몰랐는데 일단 잠이 들자 만족감에 젖어 들어

통나무처럼 죽은 듯이 잠들었습니다. 일어나 보니 이미 해는 머리 위에 떠 있었습니다.

 

나는 뉘블룽 리충 산을, 이제는 거기를 오르려는 열망이 아니라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올려다보며,

내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 산을 보고 있자니 뭔가를 해냈다는 만족감이 차오릅니다."

"그렇지." 그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일을 시작할 거란다."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지난번 산에서 저는 기도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를 위해 기도라는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너에게 있어 기도란 무엇을 뜻하니?"

"음, 보통 저는, 뭔가가 필요하거나 고통 중에 있거나 아플 때에 기도를 하곤 합니다.

때로는 감사를 드릴 때도 하구요."

"그렇지." 그는 말했습니다. "너는 기도하고 있을 때, 너는 대체로 뭔가가 불확실한 상태에 있지는 않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거나, 불행하거나, 혼란스럽던가 말이야."

 

"예, 행복하거나 만족을 느낄 때 기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그렇다면 말이야." 그는 말했습니다.

"기도가 어떤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것에 틀림없다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기도를 그만두었을 테니까 말이야.

구하면 받는단다. 자신의 믿음에 정도에 따라서 구하는 것을 받게 되는 것이지.

이것이 기도의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이고. 그렇지 않은가?

예수께서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한다면 받게 될 것이다.' 말씀하셨는데, 이는 진리란다."

 

"그러나 자신이 기도할 때를 살펴보면, 너는 어떤 형태로든지 만족감을 추구하고 있단다.

높은 수준이건 낮은 수준이건 만족감을 추구하고 있는 마음은,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얻게 되지.

그리고 그런 믿음이란 거의 맹목적인 믿음이지.

그러나 기도에는 이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 있고,

우리가 기도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을 밝혀낼 수 있을 거란다."

 

"자, 너는 기도할 때 무엇을 하게 되니? 응답을 구한다 하면서, 어떤 단어들을 반복해서 말하거나,

특정한 자세를 취하거나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는 않더냐?

이런 식으로 응답을 구하다 보면 마음이 다소 고요해지기는 하겠지.

그리고 그런 고요한 상태 속에서 너는 만족감도 느끼게 될 것이고 말이야.

그리고 고요한 상태에서라야 마음은 응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하는 기도는 뭔가를 끊임없이 청하고 있는 자신을 이해하도록 돕지는 못한단다.

 

뭔가를 바라고 구하며 결과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등의 상태를 넘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를 이해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란다."

 

"기도할 때" 그는 또 말했습니다.

"너는 언제나 도와달라며 손을 바깥으로 뻗치면서 뭔가를 기다리거나 바라고 있단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곳에는 절망이라는 상태도 같이 존재하게 된단다.

너는 어떤 상태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다른 무엇인가를 얻게 해달라고 분투하고 있단다.

 

그러나 네가 보고 있듯이, 기도란 결코, 자신을 기도하게 만드는 그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단다. 그러므로 언제나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고,

이 불안한 상태가 마음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기도하게 만드는 것이지.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이란, 스스로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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