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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18장(2)

 

만약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이 이것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지 그렇지 못할지에 대해

마음을 졸였다면, 이 책은 결코 써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아가 이를 가로막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아가 스스로를 알고 있을 때,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보이며,

더 이상 그것들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욕구도 없게 됩니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자신이 선호하는(pet) 생각이나 믿음 때문에

이 글에 반응하고(reacts) 있을 뿐이라면, 또 이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고 있다면,

그대는 아직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는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에 따라 반응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자아를 이해하고, 어떻게 마음이 묶여있는지를 이해하려는 수단으로써

이 글의 보다 깊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때 변혁(transformation)이 찾아옵니다.

 

변혁은 마음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변혁은, 실재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던 자아가 소멸되는 결과로써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것들이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보게 될 때, 비로소 마음은 재잘대는 것을 그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요함 뒤를 따라서 실재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토론을 하면서,

단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를 밝혀냈고,

이는 나에게 꼭 필요했던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정신적 개념에 불과한 다양한 요가 체계들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나는 놀라운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지만,

이제야 왜 그것들이, 신의 사랑과 지혜 자체인,

그리스도의 자유에 이르는데 방해가 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진리에 대해서 씌어졌습니다.

그대가 살펴보기만 한다면, 새로운 사상(thought)이란 사람들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그것들은 모두 지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지적(mental)'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그것들은 모두 마음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며,

마음이 만들어낸 것은 진리(Truth)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관념일 따름입니다.

마음은 집중과 요가 수행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자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요가는 자아, 즉 마음이 고요해질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내 친구는 이런 말들로 우리의 공부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마음의 내용물들을 이해함으로써만이 마음을 넘어서 있는 실재는 드러날 수 있는 것이야.

그러나 자아가 있고 자아와 대립되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면, 진리란 결코 있을 수 없는데,

그것은 자아가 언제나 앞에서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지.

그럴 때 진리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단다.

 

그러나 진리란 수단이 아니며 시작도 끝도 갖고 있지 않단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 마음에 갖고 있는 것들은 자아가 투사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야."

이 말이 끝나면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토론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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