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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3장(4)

 

그러고 나서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껏 말을 했는데, 나는 마치 너희 둘에게 직접 말을 하는 것처럼 표현을 사용했단다.

이는 너희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

자신이 아니라 제삼자에 관해서만 말을 하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효과가 사라지게 되거든.'

 

'네. 맞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실 때, 내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조건들에 대해 깊이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그는 말했습니다.

'자기-이해(self-knowledge)만이 지혜를 가져오게 된단다.

그리고 그 지혜와 더불어 자신에게 사랑(Love)이 있게 되는 것이고,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란다.'

 

이렇게 밤에 함께 모여 나누는 대화(talks)는 내 삶의 크나큰 기쁨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누는 대화는,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으며

두려움 없이 스스로를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나는 노르부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이토록 완전한 친교 속에서 대화를 하며 보내는 아름다운 밤을

더 이상 당신과 함께 지낼 수 없어 아쉽기도 하고 당신이 부럽기도 해요.

이렇게 스승님과 당신과 대화를 나누면, 그 대화는 나를 놀라울 정도로 변화시키는데 말이죠.'

 

'나에게 있어서는 말이에요,'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오기 전까지 참된 사랑(true Love)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나는 마치 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꽃봉오리와도 같았지요.

우리는 함께 여기에 앉아서 사랑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들었고, 그 진리는 우리를 흠뻑 적셨어요.

그리고 이제 내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요.

 

한 사람(one)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사랑을 이해하고 있는 지금 나는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고,

내가 이해하고 있듯이 다른 이들도 스스로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어요.'

 

이 말을 마치고 그녀는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서로를 소유하려는 마음 없이 완전한 자유 안에서

우리 모두 참된 사랑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과,

뭔가를 숨기거나 숨기려 하는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경험(thing)이었으며,

이에 대해 내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란다.' 내 친구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거짓된 것을 믿고 있고, 그럼으로써 사실상 우리가 그것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이지.

우리는 마음이 있다고 믿고 있어 거기에 붙들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비참한 이 처지를 만들어 낸 원인을 이해하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이지.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자유가 즉각적으로 들어서게 된단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의견이나 믿음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새로운 지식이 마음에 알려짐에 따라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변할 수 있는 것(changeable)은 실재가 아니야.

왜냐하면 실재는 결코 변할 수 없기(unchangeable) 때문이지.

 

실재-신-사랑은 결코 변할 수 없으며 우리 안에 언제나 현존(ever-present)하고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변하는 것은 결코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볼(discern) 때라야 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질병과 죽음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건강과 생명에 관한 생각으로 바꿈으로써

자신을 보다 낫게 만든다 할지라도, 이것 역시 마음의 영역에 속해 있는 일이다.

네가 이 사실을 깨닫고 있을 때, 이러한 관념과 대립되는 것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실재가, 자연적으로 들어서게 된단다.

 

실재는 선도 악도 모르며 또한 질병이나 죽음도 모른다.

사람만이 이러한 믿음들을 만들어 내어 자신을 슬픔과 갈등 속에 묶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진리-실재(Truth-Reality)를 경험할 때,

너는 더 이상 그것(It)에 대해 견해나 생각 등을 갖지 않게 된단다. 그저 알고 있을 따름이지.

 

그러나 네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의 근원은 자신 안에(within you)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너는 반드시 네가 다른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단다.

또한 자신의(your) 반응, 자신의 두려움, 타인이나 다른 집단을 향한 적개심,

자신의 믿음 등과 같은 것들도 이해해야 하며

방금 말한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도 알아야(see) 한단다.

 

자기가 다른 이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자신의 생각-느낌-반응(thought-feeling-reaction)의 모든 과정을 알아보게 되고,

이로써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네가 자신을 이해하게 될 때,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 만든 조건들에 의해

제한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자신의 조건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계속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자신의 조건, 자신의 믿음, 자신의 견해, 자신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야.

이 모든 것들은 오직 너의 마음 안에서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그것들은 네가 그것들에게 부여하는 힘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단다.

 

만약 너의 마음이 고정 관념(fixed ideas)과 믿음들에 의해 통제를 당하고 있다면,

너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진리도 결코 알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너는 거짓된 것(what is false)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너의 마음이 이해를 통해 유연하고 자유롭다면

너는 참된 의미(the True meaning)를 경험하게 될 것이야.

 

왜냐하면 그때 너는 거짓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된 것(the false)은 네가 창조하는 것이지만, 참인 것(the True)은 네가 창조하지 못하는 것이다.

참인 그것은 언제나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너는 자신이 어떻게 다른 이들과,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네 안에 있는 완전한 그것(the Whole)은 다른 모든 이들 안에 있는 완전한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너는 완전한 그것 자체로 말미암은 결과인 것이야.

완전한 그것의 한 부분으로서의 결과가 아니란 말이지.

왜냐하면 완전한 하나(Wholeness) 안에서 분리(division)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실재로서 너는 이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으며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실재란다.

이 사실에 대한 이해만이 홀로, 자신과 세상에 꼭 필요하면서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개인에게 먼저 그 변화가 올 것이고 그리고 나서 곧 세상에 그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세상이란 개인들이 모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만약 네가 이 사실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지금 세상이 있는 모습대로 만든 것은

바로 우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씨를 뿌린 대로, 우리는 거두게 된다."

내면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바깥도 그와 같이 될 것이다.

 

너의 마음을 들여다보아라. 그러면 사회를 지금의 모습대로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느낌-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회란 우리들 자신이 투사된 것이며, 세상 역시 그러하단다.

 

자신이 잔인하고,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독단적이고, 탐욕스럽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움으로 가득할 때, 너의 몸과 환경 역시 자신의 그런 마음 상태에 따라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너는 정직해야 한단다.

너는 반드시 자신의 생각-느낌-반응에 대해 자각해야 해.

특히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단다.

그러면 자신이 무엇인지 너는 알아보게 될 것이야.

 

또한 무엇이 실재를 가리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고.

자아가 얼마나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내 뒤로 물러서라. 사탄아." 사탄이란 곧 자아를 뜻하며, 자아는 거짓말쟁이요, 속이는 자이며,

실재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실재가 직접 일하는 그 장엄함과 비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창조적 지혜이며, 사랑이자, 권능(Power)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넘어서 있단다.

 

거짓된 것이 죽고 나면, 그 자리에 실재가 나타난단다.

그때가 되면 거기에 참된 관계맺음이 있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관계란 자유와 행복과 번영과 사랑과 애정을 뜻한다.

 

마음은 수많은 껍질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마음의 보다 깊은 곳에 있는 껍질들 속에

숨겨져 있는 자아도 있단다. 그것은 아기 때부터 자신을 가두는 관념의 껍질들을

계속해서 쌓아 왔으며,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때 그 일을 하도록 만드는 동기의 대부분은,

오해의 연속이라는 사슬 뒤편에 숨겨져 있단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내면이 혼란스럽고, 화로 가득 차며,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는 원인이란다.

 

그리고 서로 충돌하는 욕망들 사이에는 매우 격렬한 다툼이 있게 되는 것이지.

우리는 칭찬하기도 하고, 수긍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고, 단죄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는 이 모든 이유는 바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조건들 때문이고,

우리는 이 조건들이 실재(real)로 존재한다고 믿어버림으로써 이런 조건들을 영속시키고 있는 것이지.

 

이것이 얼마나 거짓된 것이며, 어떻게 해서 이런 조건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거기서 풀려날 수 없단다. 자아가 이 모든 것들이 허구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자아가 얽매여 있던 조건들이 자아와 다른 것이 아니라 곧 자아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자아는 스스로를 투사하는 것을 멈추게 되어버리지.

 

왜냐하면 그 순간 자아는 자아 자신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가 곧 사탄이며, 자아는 반드시 이에 대해 알아야 한단다.

그러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을 투사하기를 원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활동을 멈추게 된다.

그때 사람의 생각이나 의지로 만들어 내지 않은 침묵이 존재한다.

 

자아가 활동을 멈출 때, 사랑이자 지혜이자 창조성 자체인 실재가

자아의 노력 없이 들어서게 된다.

자아가 의식이라는 길 바깥으로 사라지게 될 때 실재는 활동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께서 오실 길을 깨끗하게 하라"는 말의 뜻이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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