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8장(4)
"선악은 한 나무에 열리는 열매이며 뿌리는 하나이다.
그 뿌리는 인간의 마음속에만 있으며 거기서 만들어내어지는 것이요.
그것은 '참'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추안타파가 내 귀에 속삭였습니다. "승원장이 지금 설교를 듣고 있군요."
스승은 그것을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어쩌면 추안의 마음을 읽었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추안타파 너도 마찬가지야"
"진리 그것은 선악, 과거,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진리란 순간에서 순간으로 지금 생명의 생생한 표현이다.
그 속에는 어떤 갈라짐도, 죽음도 없으며 영원히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이 법열 속에서만 무한한 사랑과 슬기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과거로 도피하지 않고 미래를 헛되이 꿈꾸지 않으며
항상 지금에 살기 때문에 그대가 하는 모든 일은 거기에 걸맞은 것이 되고
그 보수 또한 놀라운 것이 된다."
"자, 아들아" 하고 이번에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평온하면 삶의 기쁨이 솟으며 마음을 통제하거나 분석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스스로의 마음의 상태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어찌해야 한다든가 안된다든가 하는 스스로의 자아로 생각하여
긴장이나 공포를 자아내던 원인인 온갖 미덕이나 부덕에서 해방된다.
갖가지 미덕의 응어리에서 해방되면 공포가 사라지고 대립하는 것도 없으며
오직 사랑과 슬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실재 속에서는 다만 사랑과 슬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때 비로소 그대는 참으로 창조하는 자가 되며 주(主)가 다시 말씀하실 때의 그릇이 된다.
만약 그대가 무엇인가가 되려고 끊임없이 자아와 씨름을 한다면 그 괴로운 투쟁은 끝이 없다.
그러나 '자기자신[참 나, 신아(神我)]이 참으로는 이미 지금 그것이다.'고 알았을 때,
그때 비로소 무애자재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가 언젠가 알지 못할 먼 미래에서가 아니라
실은 지금 이미 완전한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의 여태까지의 생각과 행위가 모두 한정되어 왔던 것이다.
끝없고 조건 없는 것을 이해하려면 마음이 자아의 생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본래 '무(無)'인 자아는 녹아 없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만 비로소 실재 곧 참 나는 '지금'속에서 실재 곧 신 스스로를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나 스스로는 무(無)이다.'
나는 자신 속에서 깊은 변성(變性, transformation)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여태까지 나를 가르쳐오던 사물은 이제 나의 안에서 사라져 갑니다.
나는 나의 느낌을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기쁘다."하고 스승은 대답하며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대의 마음이 윤리의 모순을 짊어지고 있는 동안은
그대는 자기의 실상(實相)이라는 진리를 깨달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대의 마음이 온갖 윤리, 도덕, 차별, 분리, 구별 따위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으니
그대는 일체의 반동, 시간, 단절, 대립에 시달리지 않는
이른바 '자연법이(自然法爾)'의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터득할 것이다.
이제는 생명의 흐름이 생명 본래의 일을 한다. 아버지 신만이 역사하신다."
"그대가 입으로 내보낸 말이 헛되이 그대에게 돌아오는 법 없고 그 목적을 다하리라"
그리고나서 스승은 승원장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승원장을 보라. 다른 고승들도 마찬가지지만 마치 자기들이 앉아 있는 방석처럼
힘없는 말을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이 말에 승원장은 놀라면서
"스승이시여, 저는 제가 이 주위의 형식이나 교리 전부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럼 왜 거기서 나와 인류를 정말 돕는 사람이 되지 않는가?" 승원장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스승은 말씀하십니다. "부름을 받는 자는 많으나 선택받는 자는 적다"
스승은 승원장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실재에는 지금이 있을 뿐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이 깨달음을 허무하게 미루면서 후일을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대는 자기자신을 가짜 미덕에서 풀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대는 여태까지의 어리석음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위하여는 자기 자신의 온갖 상념이나 동기나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하는 바에 대한
그대 자신의 반응까지를 잘 꿰뚫어 보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무지란 학습의 결여가 아니라 가치의 혼란과 갈등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승원장 그대는 지금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결정하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그대의 마음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뒤얽혀 있고
그 속에 그대는 휘말려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대는 모방자에 불과하다.
그대는 이미 무(無)가 만들어 놓은 어떤 틀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 하고
실재란 이러이러해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 마지막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딱하게도 거기에 자기자신을 맞추어 나가면서 결국 '참' 곧 신인 자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대는 그렇게 남의 흉내를 냄으로써 어찌 항상 실재하는
대생명의 끝없는 기쁨을 실현할 수가 있겠는가?
생명은 그저 항상 있으며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란 얽매이지 않는 '하나'이다.
그대의 마음이 형식이나 의식, 차별, 구별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대에게는 이해되지 않는다.
가짜를 지금 꿰뚫어 봄으로써만 승원장이여 그대는 참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권위를 세우고 그것을 높이는 것은 그대의 알맹이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기에게는 일을 해낼 만한 역량이 없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다른 무엇인가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대는 '참 있음' 곧 '실상'아닌 어떤 생각을 위안으로 삼고 그 속으로 도피하려 하는 것이다.
그대의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대 자신이 손발이 꽁꽁 묶여 있는 것처럼
그대는 여기 이 많은 라마승들을 얽어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스승은 나를 항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은 참으로 있는 것이요. 그 스스로 이미 완전이며, 자아가 사라졌을 때
무애자재롭게 생명 그것이 나타난다. 개아(個我)는 분리 속에 있는 것이요,
자기를 남과 별개의 존재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의 대생명이 있을 뿐이며 그 속에는 어떠한 분리도 단절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리, 단절이란 마음의 환상임을 알게 된다.
그대는 이제 여러 가지 미덕의 숭배나 죄의 두려움에 마음이 흔들리는 일은 없으리라.
또한 깨달음을 방해하는 윤리라는 좁은 길을 더듬어 갈 필요도 없다.
여기에 있는 승원장은 여태까지 어떤 틀에 자기를 맞추어 왔기 때문에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공포를 없애려면 자기의 심상이 '지금' 완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혼갖 허영이나 질투, 부러움이나 소망, 희망, 회한이나 공포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모든 것은 다 그대가 시간(과거, 현재, 미래)이라는 미망에서 해방되고
참된 깨달음을 찾을 때 사라져 버린다.
마음이 가짜로 가득차 있으면 그것이 가짜임을 꿰뚫어 봄으로써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러면 마음에서 가짜가 없어지고, 항상 있는 생명이 의식과 더불어 점점 확대되어 가면서
필경은 실재로 마음이 가득하게 된다.
한편 실재 그것 밖에 있는 것은 슬기와 사랑과 이해로써 그 정체와 원인을 분간할 수 있게 된다."
스승은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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