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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10장(8)

 

차츰 날이 저물어 우리는 강가에서 야영 천막을 쳤습니다.

밤의 어둠 속을 계속 걷는다는 것은 이런 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구나 목적지인 버돈까지는 아직도 10여 킬로미터가 남아 있습니다.

버돈에서 우리는 참포강을 건너게 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긴 어떻게 이 강을 건널 수 있는 건지 나는 몰랐지만 아무튼 강에 닿기는 했으니

이제 한시름은 놓을 수 있었습니다.

 

스승이 우리가 야영할 지점 주변을 살피며 돌아다니다가 동굴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그야말로 속세를 떠난 사람이 한 명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가?"하고 스승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오늘로 꼭 22년이 됩니다."하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마침 그 날에 우리가 거기에 닿은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무엇을 먹고 살아 왔을까요?"하고 내가 물었더니,

"아아, 그야 물고기나 그 나름대로 알고 있는 여러 가지 풀이나 나무뿌리를 먹었겠지.

참포강은 물고기가 잘 잡히니까"하고 스승은 대답했습니다.

그 사나이는 나의 스승이 현세에서 큰 스승 중의 한 분임을 눈치채고는

우리와 동행하고 싶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인상도 좋고,

어떤 계기에 밀교 과학을 알게 된 유목민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승은 그의 태도가 진지하고 아주 맑은 인품임을 보고 퍽이나 감동을 했지만,

우리가 특별한 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데리고 갈 수는 없다고 타일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새삼스럽게 스승이, "자네는 그 22년 동안에 무엇을 공부했는가?"하고 묻자,

"이 참포 강을 걸어서 건널 수가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뿐인가?" "네" "원 저런, 그 무슨 시간 낭비인가?"하고 스승은 탄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은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스승과 함께 지냈던 어떤 때에 나 자신도 배운 것이었습니다.

스승의 이야기는 그 수행자의 열의를 더더욱 부추겨 놓았습니다.

그는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이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스승은 그의 희망을 받아들이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정말로 되었을 때 내가 자네에게로 갈 것이야.

내가 있는 곳은 차추 강 가까이의 자무을이라네.

언젠가 자네는 큰 가치가 있는 진주를 찾아내게 되겠지"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진리를 알려는 열망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듯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를 뒤에 남기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나는 몇번씩 뒤돌아보고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식량이나 숙소가 우리를 위해 마련되어 나가는 모양을 보며 나는 그저 놀라기만 했지만,

스승은 처음부터 절대의 확신 속에 있었습니다.

"나도 스승처럼 흔들림 없는 신념을 가지고 싶다. 그러면 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터인데"하고

나는 자주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때때로 스승은 나의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고는

"자네도 그렇게 된다네"하고 격려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저 짧은 그 한 마디이지만 그것은 나의 귓속에서 언제까지나 강하게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스승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나 항상 그것을 주도하는 임자라는 것이

그런 순간마다 퍼뜩퍼뜩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약 3킬로미터쯤 따라 내려가 야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녁 식사는 물고기로 했고, 다음날 아침도 물고기를 먹었습니다.

스승이 어떻게 물고기를 입수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르는데,

왠지 그 때는 그것을 스승에게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다음날 다시 출발하여 약 4시간 만에 버돈에 도착했습니다.

4시간의 행정은 더더욱 어렵고 위험했습니다.

하루에 50킬로미터는 무난한 우리들의 걸음이었지만

그때는 2,3 킬로미터를 걷는데도 거의 1 시간이 걸리는 그런 어려움이었습니다.

 

그 길을 지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곳에 따라서는 전혀 길도 없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참포 강을 건너가자는 것일까요? 궁금증을 스승에게 털어놓았더니

스승은, "만사 잘 되도록 준비되어 있다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스승은 나의 신념이 약한 것에 실망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실 만사가 다 준비되어 있고 충족된다는 것이

차례차례 일어나는 사건에 의하여 증명되어 감에 따라 나의 신념도 차츰 강해져 갔습니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모든 일의 배후에는 어떤 지혜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일에나 아주 자질구레한 데까지 빈틈 없이 일이 되어 나갔습니다.

 

차츰 나는 "과연!"하고 수긍하게 되었으며 드디어는 아무런 의심이나 염려 없이

그대로 확신하게까지 되었습니다.

우주를 지배하는 예지가 있고, 그 예지는 또한 우리들까지도 지배하고 있음이 깨달아졌습니다.

그 예지는 완전하기 때문에 아무리 미세한 사물이라도 빠뜨리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로부터 이 신념은 항상 나에게서 떠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나 스스로는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으며, 우주의 예지에 모두를 그대로 맡겨 버립니다.

그러면 일체가 나 자신이 계획한 것보다 몇천배나 자유롭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 계획을 하면 결국 다시 그것을 뒤집어야만 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모든 일이 스스로 제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면 일체를 다 알고 움직이는

우주의 예지가 이끌어 진행시킬 때처럼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비로운 빛이시여, 나를 이끌어주소서. 나는 보기를 원치 않나니,

한 걸음이라도 좋으니 나를 이끌어 앞으로 나가게 하소서"하는 경건한 기도 그것입니다.

 

주 예수의 말이 자주 생각납니다.

일컬어, "나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인 신이 하시는 일을 나 또한 그와 같이 한다."입니다.

이것은 신의 완전한 예지가 모든 운동을 가장 미세한 데까지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신념을 가지고 행동함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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