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13장(6)
나는 어떤 방식으로도 그가 하고 있는 말에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었으며,
내 안에서 변혁(transformation)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에 결코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을 이제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마음이란 시간과 기억과 관념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할(see) 수 있었습니다.
자유로워지고자 한다면, 마음은 자신이 결코 진리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높은 차원이든 낮은 차원이든,
기억은 결코 자신을 넘어서 있는 그것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나는 마음, 즉 내(the me)가 진리를 결코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볼(see)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진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때라야 비로소 나는 진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때, 마음은 고요(still)해졌습니다.
그 고요함은 힘에 의해 강요된 고요가 아니라 자유를 통해 온 고요함이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인가가 되어야겠다고 바라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로 되어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내 마음은 결코 자신을 진리로 변모(transform)시킬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마음은 진리를 찾아낼 수도 없었습니다.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마음은 고요해져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때 시간에 속해있지 않는 고요함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 고요함은 힘이나 강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찾아오는 고요함입니다.
마음이 생각을 지어내며 재잘대는 것을 멈추었을 때, 그 침묵 속에 실재가 존재하며,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the Unknown)이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성(creativeness)입니다.
나는 결과에 대한 그 어떤 욕구도 갖지 않았습니다. 모든 행동이 멈췄고, 생각도 멈췄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각의 최고 형태인 것인데, 왜냐하면 이제 그 자리에 창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이제 더 이상 기억이나 과거도 아니었으며,
전에 참이나 거짓이라 생각했던 것의 표현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고, 더 이상 그것들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지적 행위가 멈췄습니다. 나는 더 이상 방황하지도 뭔가를 궁금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생각도 생각하는 자도 없었고, 경험도 경험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기억이나 시간을 통한 경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소멸된 가운데 경험의 상태만이 지속될 따름이었습니다.
어제, 오늘, 내일은 완전히 멈추었습니다.
그것들은 마음의 바깥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시간에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은 시간 없이 존재하며,
시간 없이 존재하는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원인도 없고
따라서 결과도 없이 존재하는 영원한 것이었으며,
원인을 갖고 있지 않은 그것(that which is without cause)이 바로 실재입니다.
아버지(the Father)께서 그분의 일을 하시고 계실 따름입니다.
여기에 바로 창조성, 즉 완전함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진리가 거기에 즉각적으로 들어섰다는 것과(I saw now that the Truth was immediate),
시간의 산물인 마음이 완전히 멈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생각은 시간에 속해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순간,
모든 인간의 문제는 시간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 즉시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실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람만이 자신의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었고,
이것을 아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또한 나는 모든 인간의 문제들이란 기억과 경험과 시간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들은 문제 자신이 발생한 차원에서는 해결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기억이 작동하길 그쳤을 때, 문제들은 그 순간 즉각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시간을 넘어선 무엇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시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으며,
시간은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 마음 바깥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신만 홀로 존재하고 그밖에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모든 문제는 사랑과 지혜인 신 안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내가 이 사실을 이해하게 되자, 창조성이 들어섰으며
나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한자(Infinity) 만이 유일한 실재였습니다. 나는 더 이상 되풀이 하는 기계가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하며 시작도 없고 따라서 끝도 없는,
활발히 움직이는 창조 원리(active Creative Principle)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나는 자기-이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아는 실재 안에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나는 실재가 곧 자유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유일한 시간입니다. 내일도, 어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래와 과거가 현재를 가리고 있을 때, 지금(the now)은 깨달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명상이란, 자신을 구속하고 제한하면서 다른 것들을 배제시키는 집중의 수단이 아닙닌다.
명상이란 자유로움입니다. 시간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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