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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5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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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락체 곰파(수도원을 뜻함)는 티베트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들 중 하나였습니다.

트락체 곰파는 산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토빙 추 강의 계곡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저 멀리에는, 라사에 있는 포탈라 사원의 금색 지붕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지붕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일 년 중 이 시기가 되면, 밤에는 엄청 추웠으며 해가 지고 나면 모든 것이 얼어붙었습니다.

 

밤이 되면 하늘은 대체적으로 구름 없이 푸르렀으며,

수백만 개나 되는 별들은 하늘을 밝히며 바삭바삭 부서지는 수정같이 맑은 눈에 반사되면서,

계곡 전체로 은은한 빛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눈이 내리는 시기도 있었는데, 그때에는 강한 눈보라를 일으킬 정도의 모진 바람을 동반하였고,

어떤 지역에서는 10 피트(약 3m)도 넘게 눈이 쌓이곤 했습니다.

이러한 강한 눈보라가 몰아칠 때면, 바로 몇 야드 앞도 거의 볼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야크와 당나귀의 줄지어 가는 행렬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들은 계곡을 터벅터벅 오르내리며 티베트 안팎으로 짐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겨울과 여름은 마치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강한 눈보라가 몰아치든,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이런 것들에 관계없이 말입니다.

 

때가 되면 어느 날 나는 오크 계곡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200 마일(약 320km) 가량 떨어져 있는 링마탕과 칼림퐁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오크 계곡까지 가려면 2 주일가량 소요될 것인데,

거기에 가려면 얼음과 눈으로 덮인 강과 산길(passes)을 넘어야 합니다.

 

게쉬 림포체는 겨울에 여행을 할 때면, 수많은 야크들을 같이 데리고 갔습니다.

야크 떼가 앞서 가면서 길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히말라야의 눈길을 가르며 가는 데 있어 야크는 최고의 쟁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몇 마리의 야크가 쌓여 있는 눈을 가로질러가다 보면,

이내 그 위험천만한 눈 위로 길을 만들곤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돌아가는 길에 라사(Lhasa)는 들리지 않고 지나쳐가기로 동의했습니다.

자기들이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 여기는 관료들을 상대로

시간을 낭비한다 해도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침내 우리의 여행을 시작할 날이 왔을 때 우리는 무척 고무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도원으로부터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무역로는 캬 추(Kya Chu) 강이 토빙 추 강에 합류하는 지점부터 캬 추 강을 따라 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다가 오른쪽으로 빠졌으며, 얼음을 찍어가며

토빙 추 강과 키 추(Kyi Chu) 강 사이에 있는 삼각지를 통과하면서 길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남파(Nampa)라 부르는 곳까지

눈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길에 쌓여 있는 눈을 파헤치며 갔습니다.

 

(무역로로 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갔던 이 길은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은 아니었으나 꽤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토빙 추 강과 키 추 강이 합류하는 삼각형 모양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라사(Lhasa)에서 끝이 나 있었습니다.

 

우리는 룽상 관문(Lungsang Pass)을 통과하였으며,

라사보다 10 마일(약 16km) 가량 더 먼 곳에 있는 키 추 강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20 마일(약 32km) 여행을 하는 수고를 덜게 되었습니다.

무역로는 겨울이 되면 길이 질퍽해져 상당히 그 위로 걷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 4 시 정도에 우리는 종토 곰파에 도착했으며, 이 날은 거기서 쉬면서 밤을 묵었습니다.

이렇게 수도원을 거쳐 가는 길 역시 우리가 키 추 강을 가로지르는 수고를 덜게 해 주었습니다.

키 추 강은 겨울에 상당히 위험한데, 어떤 부분은 얼어있고 어떤 부분은 얼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라사를 거치지 않고 가는 길을 골라 가고 있었는데,

이는 그 지역 관리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진리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거나 아무 것도 모르는 관리들보다,

시간과 정력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전통과 예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래서 그들에게 진리란 하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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