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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5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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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소위 지식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결코 할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며,

그들은 언제나 권위자들의 말을 인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단다, 아들아. 맞는 말이야. 마음에 유연성이 없다면 이해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지.

사람이 고정된 생각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면, 굳어버린 마음을 알아보기란 정말 쉬운 일이란다.

그리고 완고해진 마음 안에 진리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지.

 

진리는,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는 자신의 조건을 자각하고 있는 마음을 언제나 펼쳐내고 있단다.

진리는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으로써 우주 안에 있으며,

또한 사람 안에서도 사람을 활기 있게 하는 힘으로 존재하고 있음이 확실하단다.

우주를 활기 있게 하는 생명(Life)과 인류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명 사이에

분리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

 

사람이 스스로의 제한된 생각으로부터 풀려나게 되면,

생명은 사람의 신성한 본성을 펼쳐내게 된다.

그 본성이란 바로 영원하고 항상-현재에 존재하며 죽음도 질병도 모르는 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대립된 상태 안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할 따름이야.

그러나 마음 안에, 무엇인가로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때,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 끊임없는 다툼이 있게 되지.

생명-죽음, 건강-질병, 성공-실패와 같은 것들 말이야.

 

이러한 다툼이 그치게 되면, 실재는 그 즉시 들어서게 되는데,

왜냐하면 실재는 항상-현재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네' 나는 말했습니다.

'의식(the Consciousness)이 제한된 생각으로부터 풀려나 자유롭게 될 때라야,

그때야 비로소,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존재자에 대한 자각이 있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자"는 "되어감"의 과정을 통해서는 결코 깨달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것으로 된다는 것은 언제나 미래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되어감", 그것은 언제나 내일에 있으며, 내일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존재자"가 깨달아지기 전에 반드시 그쳐야만 하는 마음의 갈등인 것입니다.

 

"나"라는 독립된 개체는 사라지고 온전한 "존재자"가 그저 있게 되는 것은,

내가 제한된 생각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그것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함으로써,

과거와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제한된 생각으로부터 풀려날 때라야 가능합니다.'

 

'맞는 말이로구나, 아들아.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너는 존재자를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바깥세상을 보며 마음이 향해 있구나.

너는 신체뿐만 아니라, 자신이 정신으로 만들어낸 관념과 생각들에 대해서도 자각할 수 있을 테지.

그리고 네 눈을 감으면, 생명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고.

 

이것은 바로 마음에 알려진 것들이야.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지, 실재(Reality)는 아니야.

이러한 모든 것들, 즉 알려진 것들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라야

너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을 넘어서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단다.

이것이 곧 마음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the Unknown)이지.

 

네가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들이 창조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존재자가 그 즉시 있게 된단다.

그러면 마음으로 결코 설명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자각이 있게 되지.

 

그 자각은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

그리고 이 자각은 생각이나 기억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창조성 그 자체야!

 

너도 알고 있듯이, 존재자를 자각하고 있는 자와

그저 무엇인가로 되어가는 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단다.

소위 진리를 공부한다고 하는 자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단계에 놓여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무엇에서 무엇인가로 되고 있지.

무엇인가로 되어가고 있는 자는 시간(time)에 사로잡혀 있지만,

존재자를 자각하고 있는 자는 더 이상 시간(Time)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지.

왜냐하면 그는 시간(time)은 시간을 넘어서 있는 그것(the Timeless)을

결코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안에서만 항상-현존하고 있는 그것이 드러나게 되지.

 

찰나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 마음이 고요하고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면,

그 찰나의 순간 안에서 항상-현존하는 그것이 깨달아지게 된단다.

 

흔히들 요가를 수행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바깥 세상에 대해 감각의 문을 닫고

내면의 감각에 집중하는 방식 중 하나를 뜻한다지만,

이러한 방식은 마음을 넘어서 있는 항상-현존하고 있는 그것을 결코 드러낼 수는 없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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