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6장(5)
'내 아들아,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너는 환상의 그물에 걸리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너에게 격려와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들에게 네가 의존하고 있다면,
그들이 아무리 숭고하다 할지라도 너는 분리와 의존이라는 환상 속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집단(groups)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이 있게 마련이고,
자신이 아닌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대개 대립의 날을 세우고 있고, 이로써 혼란을 더욱 심화시킨단다.
그러나 시작도 마침도 없는 그것을 찾고자 한다면, 네 자신 안에서 이를 찾기 위한 여행을 해야 한다.
자신 안을 향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모든 길들은 환상으로 이르게 하는 어지러운 것들이며,
이 환상 안에는 자유도 진리도 없단다.
갈등과 슬픔을 해결하고자 할 때 그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같은 수준의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면,
오히려 더욱더 깊은 슬픔과 갈등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네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부단히 자각하면서,
멈추지 않고 참을 찾기 위한 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너는 항상-현존하고 있는 실재,
즉 사랑이 표현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그때 너의 여행은 거짓과 참을 드러내는 과정이 될 것이며,
계속해서 자유로워지며 창조적으로 되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에만 자유와 진리(Truth)가 있게 되는 것이다.
'아들아.'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 자유로움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너는 그 어떤 권위,
그 어떤 개인에게도 의존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야.
그 권위나 개인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말이야.
어떠한 형태로든 무엇인가에 의존하게 되면, 혼란(uncertainty)과 두려움이 생겨나게 되고,
따라서 이것들이 실재를 경험하는 것을 방해하게 되는 것이다.
아들아, 오늘날 네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흔히들 높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창조적 이해는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조금밖에 있지 않단다.
그들에게는 자기-이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저 멀리 있는 희망은 땅바닥에 내팽겨지게 되는구나.
자기-이해가 없을 때, 우리는 갈등과 슬픔과 유혈극(bloodshed)에 빠지게 된단다.
자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을 때라야, 너는 자아를 넘어서,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으며 잔잔한 존재자(Being)의 상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는 항상-현존하는 실재, 즉 사랑과 지혜가 언제나 확고하게 있단다.
너는 항상-현존하는 실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자아 자신이 실재의 나타남을 방해하고 있는 걸림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항상-현존하는 실재는 일을 하게 된다.
자아가 바로 악의 근원(the cause of the evil)이란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이 사실을 깨닫고 계셨지.
"내 뒤로 물러서라, 사탄아."
그리고 네가 자아를 지켜봄에 따라, 너는 현상 저 너머에 있는 내면의 영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면의 영은 곧 사랑이자, 실재의 지성적 표현이란다.
그리고 내면의 영을 깨닫게 될수록 그 결과로 외부도 분명해지게 된다.
자, 그리고 이 내면의 영은 다른 이 안에 있는 영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무엇인가가 아니다.
그것은 네 안에서 실재(Real)인 것처럼, 다른 이 안에서도 그러하지.
실재 안에서는 분리(separation)도, 분열(division)도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에 너는, 악이라 부르는 것은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과 악은 자아를 제외하고는
자아 밖에 있는 그 어떤 공간에서도 존재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아란 환상일 뿐이며 모순 상태에 있는 기억과 관념의 묶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들아, 네가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너는 영 바깥에서 자아가 만들어내는 현상들을 제대로 알아보게 될 것이다.
바깥이라는 자아는 그 교활한 속임수와 현혹시키려는 시도와 허구성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 안에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길을 잃고 있는 것이지.
사람들은 이러한 혼란과 불행에 대한 근본 원인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흔히 여론(public opinion)이라 부르는 것을 무턱대고 받아들이고는,
그것들이 생각-느낌-반응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들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지금 너는, 자아와 실재를 밝혀내는 과정이라는 말을 통해
내가 무슨 뜻을 전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고 있구나.
우리는 너무나도 흔하게, 자신들을 구속하고 있는 조건들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조건들은 자기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느낌-반응이라는 과정으로부터 발생하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
너 자신의 생각-느낌-반응을 알아보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때라야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
아들아, 너는, 만약 어떤 사람이 특정한 믿음을 따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note)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믿음에 반해서 일어나는 어떤 생각이나 의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즉각 폐기시켜(rejected) 버린단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함이 없이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무지는 계속해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네가 실재의 즉각적인 현존을 깨닫게 되면, 그때에는 그 어떤 구별도,
그 어떤 분리도 존재하지 않게 된단다. 그때에는 모두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첫째와 꼴찌, 꼴찌와 첫째, 모두가 다 같단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계신 현존(Living Presence) 안에서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분리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서로를 구별 지을 수도 없는 것이다.
모든 이는 항상-현존하는 사랑(Ever-Present Love)이라는 왕국에서 하나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마지막 사람도 이를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과 똑같단다.
우리는 모두, 지금이라는 순간 안에서 언제나 무한한 그것(the Infinite)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 바깥에서는 우리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데,
무한자(Infinity) 바깥에는 그 어떤 존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리와 구별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자, 아들아. 모두가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모두, 살아계신 신의 드넓은 성전에서,
아버지의 영광과 모든 인류의 형제애만을 위하여, 기쁨에 넘쳐 살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주(the Master)께서 모든 이를 축복하실 때처럼,
그의 팔을 들고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오 거룩한 하나여, 그동안 우리가 무지 속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당신을 바깥에서 찾았으나,
당신을 발견할 수 없었나이다. 바깥이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보았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귀한 진주를 찾고자 우리 자신의 존재(Being)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나이다.
당신으로부터 오는 영감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믿었으나,
우리가 발견한 것이라곤 두려움과 의심이라는 바람 앞에 흩날리는 낙엽이었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리의 경계선 너머로 당신 사랑의 날개를 펼쳤을 때,
당신께서는 우리의 가슴에 어느새 들어와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셨나이다.
그제야 우리는 당신을 내면에 계시는 그리스도, 당신에게서 난 유일한 아들로서 알아보았나이다.
오 거룩한 하나여, 오 거룩한 하나여.'
은수자께서 말씀을 마치신 뒤에 잠시 깊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잠시 뒤 그는 게쉬 림포체에게로 돌아서서 말하였습니다.
'삼일 뒤에 그대들이 정기 모임을 하게 되면, 그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 모임이 끝나고 나면 우리의 아들은 그가 떠나왔던 세상을 향해 다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일이 완수될 때까지 그를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나는 그의 장엄한 모습이 안개처럼 희뿌연 그 무엇 안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사라질 때 나도 역시,
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지혜로운 그분과 함께 가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히말라야를 넘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7장(2) (0) | 2023.09.18 |
---|---|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7장(1) (0) | 2023.09.18 |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6장(4) (0) | 2023.09.17 |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6장(3) (0) | 2023.09.17 |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6장(2) (0) | 2023.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