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8장(2)
우리가 다른 이들의 느낌과 고통에 대해 민감하게 알아차릴 때에만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서, 구세주(Savior)를 통해서, 관념들을 통해서, 집중을 통해서,
환생을 통해서, 음주를 통해서, 다른 종류의 탐닉을 통해서 등
그들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모든 수단을 써서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정녕 배고플 때,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 토론하지(discuss) 않습니다.
그냥 음식을 원할 뿐이지 어떻게 해야 음식을 얻는가에 대해서는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자신의 분별없음(thoughtlessness)과, 자신의 어리석음과,
자신의 편협함과 잔인함을 똑바로 바라볼 때, 그대들은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 그대들은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게 될 것이며,
이제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려 하지 않고 다만 이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대들은 고통의 원인에 대해 예리해지며, 조심스러워지며, 깨어있게 됩니다.
그때 그대들의 마음은 더 이상 무뎌 있지 않으며,
그대들은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친절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게 됩니다.
그대들이 고통을 이해하고 있을 때, 그대들은 다른 이들이 겪는 고통들에 대해서 민감해지게 됩니다.
그대들은 더 이상 회피하려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엇도 회피하려 하지 않을 때,
그대들 가슴에는 친절함과 애정(affection)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애정-사랑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성을 요구하며,
다른 이들의 느낌과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지 않고서는, 위대한 지성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성이 알고 있는 것이란, 다만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이 아니며,
"신"이라는 말은 신이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이를 이해하고 있을 때, 사랑이 존재하고, 신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내 안에서 깊이 느꼈습니다.
저 깊은 차원에서부터 변모가 일어나고 있었으며,
우리는 몇 분 동안 이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나는 "신"이라는 말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알았다고 말한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 같은 것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잠시 뒤 그는 다시 말을 하였습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모였을 때보다 오늘 모임을 갖기에 조건은 더욱 완벽합니다.
그리고 오늘 밤 우리는 더욱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로 인해 이토록 훌륭한 조건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방 전체가 엑토플라즘의 구름들로 채워지면서
거대한 하나의 구름으로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땅 위로 높이 들려져 구름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사실 그때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구름 안에 서 있던 사람들의 윤곽이 점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며,
나는 말라레파(Malarepa, 한국에서는 '밀라레빠'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음)가
그이가 늘 하던 대로 축복을 하며 우리를 환영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고,
이내 우리의 모임(seance)은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말라레파는, 특정한 누구에게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저도 우리의 형제인 게쉬 림포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대들이 모두 그가 말했던 것에 함축되어 있던 내용까지도 이해하였기를 바랍니다.
신-진리-사랑은 그대들로부터 떨어진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사랑-신은 영원하며 항상-현존하는 것으로서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신은 혼란스럽고, 조건으로 묶여 있고,
제한되어 있는 마음으로는 결코 깨달아질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마음이 어떤 한계도 없으며,
모든 조건에서 자유로운 실재-신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깨달으려 하는 마음은 그 전에 이미 자신을 스스로 조건들로 묶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스스로를 자신의 한계로부터 자유롭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라야 마음은 자신을 넘어서 있는 그것을,
제한과 관념과 언어(word)를 넘어서 있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실재는 마음에 알려지지 않은 그것이며,
언어는 결코 알려지지 않은 그것을 드러낼(reveal) 수 없습니다.
자아는 실재를 꾸며냅니다. 왜냐하면 자아는 늘 무엇인가를 모방하고, 베끼고 있으며,
한 권 한 권 모두 다 똑같이 수많은 관념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들을
그토록 많이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아는 관념들과, 다른 이들의 경험들과, 온통 말뿐인 이 모든 것들을
그저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그대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그대들은 말이란 무엇인지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대들은 더 이상 베끼거나 모방하지 않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을 되풀이하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언어와 관념들보다 더 위대하며, 그것들을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들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실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종교에 관한 책들을 읽고,
신에 대해 사색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아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자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실재에 대한 깨달음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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