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8장(8)

 

'당신을 떠나가게 돼서 참으로 슬픕니다.

더군다나 몸을 입은 상태로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생각하니 더욱 그러합니다.

당신은 저에게 아버지 그 이상이시며,

저는 당신을 볼 때마다 매우 깊은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 아들아.' 그는 대답했습니다.

'네가 몸을 입고 있는 나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시작되었단다.

그동안 네가 일할 때 나는 오랜 동안 너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곧 나는 내 생명을 내려놓게 될 것인데,

이는 몸으로부터 자유로운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이다.

 

더 이상 몸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른 영역들에서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

너의 훌륭한 안내자인 성 안토니오처럼 말이지.'

 

그리고 그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런 격언이 있단다. '지혜를 얻어라, 이해를 구하라,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서 멀어지지 말라.'

 

그러나 이 보다 더 차원 높고 더 좋은 길이 있단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사랑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신은 사랑이며, 사랑은 신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가슴속에 다른 이를 향한 미움을 품고서 그분에게 다가서려 하지.

그러나 가슴이 사랑으로 가득하며 마음에는 적개심이 하나도 없어야,

신성한 그분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들아, 너도 알겠지만, 어떤 특정한 종교를 따르고 있으며,

다른 종교를 따르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적대적인 사람은 종교적이지 못하게 된단다.

그래서 소위 종교적이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는, 인류를 서로에게서 갈라놓고 있는 이상들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아, 너도 깨닫고 있겠지만, 관념은 다른 것들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갈라놓는단다.

좌파로 기울어지는 자들도 있으며, 우파로 기울어지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그저 관념을 추구하고 있을 따름이지.

 

자신의 관념이 다른 자들의 관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태도는 적개심, 투쟁, 유혈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관념과 믿음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그 모습을 이해하게 될 때라야

평화와 사랑은 찾아오게 된다.

 

자신의 관념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환상을 놓아버릴 때라야,

사랑이 사람의 가슴과 마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단다.

그리고 사람이 거짓된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그 순간, 사랑도 즉각적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면 그때 사랑이신 아버지의 모습과 꼭 닮아 있는 존재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릴 마땅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이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우리와 전혀 다른 초자연적 존재는 아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초자연적 존재라고 내세운 적이 결코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관념을 만들고는,

그것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머리로 만들어낸 환상을 말이지.

 

사람들은 초자연적 존재라는 관념을 숭배함으로써,

자신들의 실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시도한단다.

적개심과 미움과 질투로 가득 차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말이지.

 

거짓된 것들을 이해하는 것으로써만이 참인 것이 그 즉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아들아, 이것이 곧 지혜란다.

거짓된 것을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를 이해하고 있을 때라야

지혜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라야 많은 이들이 떨쳐내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로움이 있게 되는 것이다.

너에게 지혜가 찾아올 때, 풀 한 포기도, 꽃 한 송이도, 나무 한 그루도

자기 좋을 대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는 싹이 하나 트는 것조차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무한하신 하나(Infinite One) 안에 자신의 근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란

이 땅 위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는 물질 차원을 넘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무지 앞에서 입을 다물거나, 거짓된 것들 앞에서 벙어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너는 이해를 통하여 그 오류(the error)를 수정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너는 고통이 무엇인지 묻지 않게 될 것이며

다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가장 높은 차원으로서의 생각-느낌의 형태는 이해를 통해서 오는 것이지,

관념이나 믿음에 대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자아의 독단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실재 안에서, 사랑 안에서만 우리 창조성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안전을 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안전을 구하고 있는 자는 항상 부족한 상태(in want)에 있기 때문이지.

 

네가 안전해질 수 있는 그 기초는 이해에 있는 것이지 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너는, 항상-현존하고 있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 공급의 원천 속에서

이미 매순간 지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말을 전적인 주의를 기울여 들었으며,

생각(ideas)을 만들어 내지 않고 다만 자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듣는 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 곧 자유이며, 변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자유로움 안에서 실재는 그 어떠한 형태의 한계에 의해서도 제한을 받지 않으며

무한하게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그들과 내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진리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와 시도는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석한 내용이 참이든 거짓이든 간에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그렇게 하는 것은 실재가 일을 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가장 큰 방해물로서,

머리를 써서 하는 놀이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게쉬 림포체가 나에게 들려준 마지막 이야기(final talk)였습니다.

이는 마지막 충고라 볼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는 결코 충고를 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의 말의 대부분은, 이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정화(cleansing) 작업이었으며,

이는 남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에 이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 내가 계획한 것과는 다르게, 나는 너와 함께 링마탕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겨울을 보낼 것이다.

해가 뜨고 질 때 저 아름다운 산을 올려다보면서 너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든 곳을 통틀어 이곳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림퐁까지는 네 친구가 함께 따라갈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너 혼자 가게 될 것이다.

몸으로는 혼자이겠지만 영적으로는 혼자가 아니란다.

이 십자가를 받아라. 이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었던 상징이다.

내 아버지께서 나한테 주셨던 것이지.

 

이곳을 보면 수직과 수평 막대기가 교차하고 있는 그 중심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아버지-어머니-신의 뜻에 충실한 아들을 상징한다.

 

아들은 진리이자, 사랑과 지혜인 그것 안에서 태어난다.

나는 네가 이것을 언제까지나 네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기를 바란다.'

 

그는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목에 걸려 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풀러 내 목 주위에 걸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나를 축복해주었습니다.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내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가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마치 거지의 옷을 벗어던지고 사랑의 옷을 입은 듯 느껴졌습니다.

그 사랑의 옷이 바로 그리스도의 요가입니다.

고통받는 영혼들이 그 옷의 끝자락에 손을 닿기만 하더라도 그들은 낫게 될 것입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