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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29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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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후 내 친구와 나는 그들을 떠나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발코니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우리는 출발했으며,

라마승들은 "옴 마니 받메 훔"을 노래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수도원 전체가 나에게 작별을 고하는 듯했습니다.

 

그날 아침 일출은 특별히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내가 밤낮으로 그토록 자주 올려다보았던 사랑스러운 산인 초몰하리도,

내가 산에 대해 품었던 사랑을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초몰하리는 나에게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반사해 비추었는데,

이는 마치 반짝이는 보석 같았습니다.

 

우리는 얼굴을 돌려 파리(Phari)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겨울이라 얼어붙어 있는 수많은 강들을 건넜습니다.

우리는 두 마리의 눈 표범들(snow leopards)이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평야들(plains)은 겨울이 되어 완전히 황폐해 보였으며,

주위를 둘러봐도 야생 야크와 야생 토끼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은 초몰하리 산으로부터 불어오기 시작하여

평야들을 휩쓸며 파리로 향해 불어 나갔습니다.

 

여름이 되면 이 평야는 들꽃들이 온 가득 피어나 온갖 색깔들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에 본 평야는 참으로 달랐는데, 평야는 온통 눈 담요를 덮고 있었던 것입니다.

 

파리로 들어갈 때 우리는 야크와 당나귀 떼의 행렬을 몇 번인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파리는 온 세계를 통틀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인 동시에,

가장 추운 곳이자, 가장 불결한 곳이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지들이 자신들의 기도 바퀴(prayer wheel)를 돌리면서

구호물을 바라며 손을 내밀면서 차가운 눈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자 그곳의 여인들은 야크의 피와 진흙을 혼합한 것을 얼굴에 발랐는데,

이는 추위와 바람과 햇빛으로부터 자신들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추위와 바람과 햇빛, 이 세 가지가 결합된 상태에 피부가 노출이 되면 엄청 따가웠습니다.

거리들은 여러 세기를 걸쳐 쌓아 왔던 쓰레기들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난꾸러기들은 똥과 오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추운 줄도 모르며 맨발로 뛰어다녔습니다.

 

죽은 개들이 거리마다 누워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들을 치우려들지 않았습니다.

반면 살아 있는 개들은 먼저 죽은 자신들의 동료들의 시체를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음이 분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오후 네 시경에 파리에 있는 방갈로(bungalow, 별장식의 단층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땔감이 많이 쌓여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불을 크게 지펴 맛있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나는 파리에서 벗어나게 되어서 기뻤으며, 친구에게 이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토록 불결한 조건 속에서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토스트에 계란 프라이를 얹어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우리는, 16 마일(약 26km) 가량 떨어져 있는 고차(Gautsa)라 부르는 곳을 향해 갔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초몰하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앞으로는 광대한 평야가 펼쳐져 있었으며,

수 백 마리의 야크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눈을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여우들과 산토끼들은 무리를 짓고 열 마리 남짓하게 각각 모여 있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양털(wool)을 나르는 야크 행렬을 만났는데, 거기에는 당나귀들도 몇 마리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며,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유쾌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길은 산중턱 위로 올라가는 길이었으며,

엄청나게 큰 바위들이 울퉁불퉁하게 머리 위로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넌 후에 고차(Gautsa)에 도착했는데,

그 다리는 오래전에 지은 부분과 새로 지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묵게 될 오막살이는 나무로 지은 그 작은 마을에 있었습니다.

헛간들 중 한 곳에서 노새몰이꾼들 몇몇 이서 기분을 좋게 해주는

창(티베트 맥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 티베트 사람들은 술에 취하게 된다 할지라도 매우 행복하며 명랑한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좀처럼 싸움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 친구는 그들에게 티베트 말로 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라마승의 복장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주었습니다.

 

그 커다란 헛간에서 이 친구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추었던 춤들 중 어떤 것들은 매우 격렬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빙빙 돌았으며, 그들의 옷자락은 거의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춤을 계속 추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었을 때, 길은 꽝꽝 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자 눈과 진흙이 녹아내려 섞이게 되면서 길은 질척해졌습니다.

길은 아마 추(Ama Chu) 강변을 따라 나 있었습니다.

아마 추 강은 15,000 피트(약 4570m) 높이에 달하는

두 산맥 사이에 있는 계곡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강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산으로부터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여름이 오면 그 강은 산에서 녹아내리는 눈들로 인하여 엄청난 급류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계곡의 끝자락에 오자 우리는 링마탕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거기서 밤을 보낼 예정이었습니다.

나는 기뻤는데, 그곳 수도원장은 우리를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이곳이 내가 게쉬 림포체를 처음 만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첨비(Chumby) 계곡으로 들어섰으며 수도원을 향해 나갔습니다.

링마탕은 이 골짜기(valley)의 끝자락이자, 계곡(gorge)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서 우리는 야퉁(Yatung) 마을을 볼 수 있었는데, 이 마을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갈 때

모든 크기를 통틀어 마주치게 되는 첫 번째 티베트 마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르할(Burrhal)이라 부르는 야생 양을 몇 마리 보았습니다.

야생 곰들은 산에 있는 숲에서 내려와 농작물이 있는 곳을 급습하기도 하였습니다.

먹이를 찾아 배회하고 있는 표범과 늑대들로부터 자신들의 동물들을 보호하고자

유목민들은 마스티프(mastiff) 개들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수도원장은 우리를 다시 보더니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이틀 밤을 묵고 가라고 설득하였으며, 우리는 그의 말대로 했습니다.

 

바깥 세계와 이곳을 가르고 있는 마지막 산맥을 넘기 전에

이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우리는 기뻤습니다.

첨비 계곡은 심지어 겨울에도 아름다웠습니다.

 

야퉁은 발전하고 있는 마을로서, 그곳에는 판자 지붕을 이고 있는 돌로 만든 집들이

아마 추 강을 따라서 이곳저곳에 박혀 있었습니다.

거기에 머무는 동안, 나는 게쉬 림포체의 숙소(quarters)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만큼이라도 내가 그의 숙소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먹고 푹 쉬었는데, 이제 우리는 제펠(Jepel) 관문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나탈라(the Natala) 관문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도와 티베트를 가르고 있는 히말라야의 산맥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게쉬 림포체의 숙소에서 저녁 식사를 든 다음에 고요하게 앉아 있었으며,

나는 게쉬 림포체의 영향력(influence)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친구도 이를 느꼈는데, 그는 우리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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