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3장(5)
나는 여러 시간을 홀로 정좌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열어젖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태까지 온갖 상념들이 마치 스크린에 비친 영상처럼 공평하게 관찰할 수가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점점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심판하거나 분별하지도 않고 찬양하거나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남의 마음을 관찰하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마음의 심층에서 마음 그것이 부여잡고 있던
온갖 생각들이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달라붙고 움켜쥐어 왔던 갖가지 것들이 차례차례로 풀려나왔습니다.
나의 마음이 형성된 과정과 근원이 이젠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갖가지 유전에 따른 경향, 무수한 인상, 생각, 편견의 결과이고,
그 대부분은 또 나 자신이 나에게 가한 제약과
본디 한계가 없는 '하나'라는 진리의 직접 파악을 방해하는
미망 속에 갇힌 사람들의 의견, 암시, 해설에서 생긴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아무런 의문도 없이 덮어놓고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스스로가 제약되어 왔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나는 미망을 미망이라 탓하지 않고 또한 미망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미망 속에서 살 수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미망이 생겨나는 소이(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설령 사방이 미망으로 에워싸이더라도
다시는 그 포로가 되지 않는다는 결의를 굳혔습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눈을 크게 뜨고 남의 의견을 샅샅이 검토하고
의문을 제기해서 살펴보아야만 하는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바를 순식간에 살펴서 그들이 한낱 모방자에 불과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또 그것만으로 그쳐서도 안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상념과 감정의 반응도 살피고 따져서
그것이 가는 곳과 그 동기와 이유를 규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자신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것들의 본질과 양상을 알고
그것들이 비롯되어 나오는 소이를 꿰뚫어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 것을 분명히 규명함으로 그것들에 대한 얽매임에서 해탈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은 사실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라네'하고 가볍게 무시해 버리던
스승의 말이 뚜렷이 떠오르면서 일찍이 생각도 못했던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란 바로 그런 것은 사실은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빛나는 '길'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길'을 나는 홀로 전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 이외에 누구도 나에게 진리를 계시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혼자서 발견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요.
'참'은 나 자신의 것이었을 뿐입니다. 남의 것이 아닙니다.
남이 말하는 진리는 결코 나 자신의 진리일 수 없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것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관념이요 신앙일 뿐,
나는 여전히 묶인 채로일 것입니다.
진리는 스스로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를 안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인내하고 이끌며
나의 안에 '지금' 계시는 영원 보편의 '한얼'이 이끄는 바에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이야말로 영원 그것이었습니다.
순간순간 내가 실재(實在)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나간 순간은 이미 한낱 기억으로 되어버렸을 뿐입니다.
그것을 붙잡아보려 한들 그것은 이미 마음의 이미지일 뿐입니다.
순간순간에 나는 과거로부터도 미래로부터도 자유로워져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도 미래도 다만 마음 속에 있을 뿐 실재가 아닙니다.
'지금' 이것만이 실재인 것입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그 밖의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밖의 것들은 모조리 관념이요 '작은 나'가 만들어낸 심상(心象)이었을 뿐입니다.
이제까지의 미망이 하나하나 풀려나가 내가 자유로워져가고 있음이 스스로도 느껴졌습니다.
그와 더불어 마음을 초월한 어떤 힘을 느꼈습니다. 나는 이제 온전한 하나입니다.
우주의 힘이 모습으로 나타나는 초점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은 이미 공포의 반대관념이 아니라
그것은 이제 '직접 체험에 의한 앎'으로 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실제 그것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실재가 무엇인지는 아직 말하지 못하지만 실재가 실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재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러므로 나도 또한 실재 그것일 따름입니다.
'나와 아버지 하느님은 하나'였던 것입니다.
'히말라야를 넘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3장(7) (0) | 2023.06.06 |
---|---|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3장(6) (0) | 2023.05.16 |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3장(4) (0) | 2023.05.15 |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3장(3) (0) | 2023.05.15 |
[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3장(2) (0) | 2023.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