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4장(2)
대사는 다시 말을 멈추셨습니다. 나의 상념을 느끼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의 입은 저절로 미소를 띠었습니다.
잠시 후 그이는 말을 이으셨습니다.
'어떤 행위가 나오기 전에 먼저 상념이 일듯이 우주의 악음(樂音)도
사람이 어떤 느낌을 갖고 연주를 하기 전에 찾아든다.
사람의 표현을 유발하는 것은 바로 이 우주의 악음이며
그것은 그것에 어우러질 수 있는 넋에게로 작용한다.
넋은 내재의 한얼인 신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악기이다.
그대의 가슴 곧 그대의 심정의 깊이에 따라 신의 조화가 그대 속에 펼쳐지고
또 그대를 거쳐 표현되어 나오리라.
그대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배워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것의 전체, 얼의 ‘한얼’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하여 신을 사랑한다 함은 그대가 이웃을 그대 자신처럼 사랑함이다.
그때 신은 그대 안에서, 또한 그대를 거쳐 말씀하시고 그대에게 불가능이란 없게 된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주가 재빨리 이루어 주리라.
특히 그대의 심신은 조화로 충만되리라.
그대가 조화로워질수록 그대의 감수성은 날카로워지고
그대의 마음도 육신도 항상 안에 계시는 신을 나타나게 되리라.
원만 완전한 일을 하시는 것은 오직 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오랜 세월을 지나도 심신이 모두 굳세고 씩씩하리라.
'항상 여기에 있으시는 이'는 항상 지금 그대로일 뿐이다.
한얼인 신은 나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대사의 심신 모두가 그렇게 젊으신 까닭을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나의 생각을 전혀 입밖에 내지 않았건만 대사는 내가 소리라도 지른 듯
또다시 잠시 말을 멈추시고 난 후,
'그렇지. 안에 있는 대로 밖은 되어지는 것이다.'하고 이어나가셨습니다.
'리듬과 색깔은 음악에서는 중요한 요소이다.
리듬이 없는 연주에는 아무 색깔도 나타나지 않지만
리듬으로 생명이 불어넣어진 화음과 연주에는 온갖 색깔이 완전히 섞여 들어 있어
그것은 마치 스펙트럼의 색들이 서로 완전한 배열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
듣는 사람의 넋에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색깔의 조화이다.'
여기까지 와서 어떤 생각이 대사의 마음을 스친 듯 한 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 따로 말하기로 하지.' 그리고 다시 주제로 돌아갔습니다.
'완전한 리듬은 바다의 밀물 썰물과 같아 그 모없고 규칙 바른 힘에는 어떤 것도 거역할 수가 없다.
완전한 리듬 속에는 무한한 창조력이 있기 때문이다.
창조주와 그 피조물은 '하나'이며 따로따로가 아니다.
우리는 거룩한 슬기 스스로의 표현인 리듬과 결코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이 완전한 리듬은 지구를 꿰뚫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해와 달 때문에 분극(分極)하며 동에서 떠올라 서로 가라앉는다.
이 힘이 지금 전자력이 되어 있고 지구를 그 축 위에 유지하며
또한 지구 위의 모든 것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만약 이 힘이 없어지면 또 다른 힘의 흐름이 무서운 속도로 끌어당겨
지구는 산산이 부서져 원자의 먼지로 환원될 것이다.
이 힘 속에야말로 모든 비밀이 있다. 완전한 리듬은 사람을 회춘시킨다.
그것은 마음을 민첩하게 몸을 든든하게 한다.
우리가 병을 다스리는데 음악을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좋은 음악으로 여태까지 팽팽히 켕기고 엉켜있던 미혹과 혼란으로부터 마음이 풀려나며
그러는 사이에 원래의 생명은 육체의 모든 세포를 조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리하여 마음과 육체는 제대로 어우러진 전자력을 되찾는 것이다.
우주의 악음은 그대로 완전한 음악이고 그것은 말하자면 신의 영원한 심장의 고동이다.
그것은 피의 흐름처럼 밀려나왔다가는 다시 되돌아들어
육체 속의 모든 세포를 순환하고 심장으로 들어가서는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한얼인 하나의 대생명의 고동이 모든 살아있는 얼을 거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과 가슴의 모양에 따라 이 한얼의 리듬도 걸맞게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만약 얼, 마음, 몸의 이 유기체가 혼란상태에 있으면 리듬도 혼란을 나타낸다.
그대의 상념과 감정은 육체를 뚫고나와 대기 속으로 멀리멀리 날아간다.'
'마치 방송국의 전파와 같구나.'하고 속으로 생각을 하자,
'그렇고말고. 그 전자파에 의해 에텔 전체가 자장화(磁場化)되고
온 세계가 거룩한 방송국의 방송을 동시에 듣고 느낄 수 있게도 되는 것이다.
동서남북, 위는 성층권 너머서부터 아래는 지구의 중심에 이르기까지 그 힘이 있지 않은 곳은 없다.
우리는 지금 세계의 지붕, 그대들의 이른바 초점과 같은 위치에 있다.
우리가 신의 심장에서 나오는 우주의 리듬에 어우러지면
우리의 생각은 신의 사랑으로 뜨겁게 세워지고
그 신의 사랑의 생각으로써 있는 자리에서 온 누리를 이롭게 북돋을 수가 있는 것이다.'
'대사는 나에게 음악의 본질을 가르쳐 주시는 것만이 아니고
보다 깊은 예지까지 계시해 주시고 있구나'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대사는 나의 생각을 역시 느끼신 듯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악기를 마음대로 다루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악기에만 한정해서는 안된다.
모처럼 훌륭한 악기인데도 서툰 연주밖에 안 나오는가 하면
아주 평범한 악기인데도 훌륭한 표현이 나오는 것을 나는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모든 개인에게도 해당된다.
신의 사랑은 영원히 한결같이 있고 누구도 거기서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두 사람의 인간이 똑같은 연주를 하는 법은 없다.
사람마다의 감정에는 여러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악보에서 그저 음부와 기호만을 보는 사람도 있고 음악을 얼른 느끼는 사람도 있다.'
잠깐 말을 끊으시더니 '그런데 말일세. 좋지 않은 음악에도 나름대로의 장점이랄까 가치가 있지......'
하고 짐짓 웃음섞인 어조로 이으시기를, '그것은 좋지 않은 음악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라네.'
그이는 다시 잔잔히 계속하였습니다.
'좋지 않은 음악은 두드러지게 조화로운 리듬이 그것을 본래의 무(無)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원래 그것은 실재(實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셈을 할 때 합계를 잘못 낸 것이나 같아서, 합계를 바로 잡으면 그 한때의 잘못은 어디로 가겠는가.
그저 사라질 뿐 잘못에는 그것을 지탱하는 법칙이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은 다만 엄연한 수의 법칙뿐이다. 조화의 법칙 또한 마찬가지이다.
색깔의 혼합, 그것이 조화의 비밀이다.
그대는 지금까지 색깔의 조화롭지 못한 혼합을 자연 속에서 본 일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자연에는 그런 것이 없다. 소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소리는 곧 색깔이고 색깔은 곧 소리이며,
자연은 항상 빛과 소리와 색깔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습을 할 때는 언제나 소리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무리하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소리가 어떻게 나와야 옳은지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이 가르쳐준다.
먼저 연주를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될 일이다.
그리고나서 차츰 템포를 빠르게 해 가고 긴장하지 않고도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연주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빠르게 연주할 수 있게 되기 위해 리듬과 표현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지나친 연습, 연습과잉이라는 함정도 있다.
언제나 새로 시작할수록 동작은 좋아지는 법이다.
마음은 해오던 것을 반복하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한번 잘못된 버릇이 붙으면 바로잡기는 매우 어렵다.
알맞게 쉬는 시간, 그것이 그때까지 의식적으로 다듬어 형성시킨 동작을
재조정하는 여유를 마음에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확성이 자리잡으며 이것은 필요 불가결의 요소이다.
몸이 쉬고 있으면서 연습을 하고 연주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그럴 기회만 주면 몸은 움직이고 있지 않더라도
정확한 솜씨를 가꾸는 일을 해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쉬고 나자 그렇게도 어렵던 악보가 쉽게 넘어간다는 경험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메카니즘을 쉬게 한 사이에 마음이 조정을 했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계산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계속 매달려 애를 쓰는 것과 같다.
그런 때는 한숨 자고나면 문제는 풀려 있기 일쑤이다.
기회를, 여유를 주었기 때문에 마음이 해결해 놓는 것이다.
연주를 할 때는 듣고 느끼면서 동시에 음악 속으로 몰입해야 한다.
자아의식은 육체의 동작을 방해한다. 마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 밖에는 하지 못하니
'나'를 생각하고 또 음악을 생각하고 하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나의 일에서 다른 일로 갈팡질팡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의 버릇을 극복하는 방법은 리듬 속으로 몰입하여 '나'를 잊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마음의 의식적 움직임 사이의 심리적인 틈을 리듬이 메꾸어주고,
그리하여 마음이 자유롭게 할 일을 제대로 하게 된다는 것을 그대는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그렇게 된 상태에서만 사람은 바른 연주를 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안에서의 일이다.
연습을 해나가면서 몸놀림도 악곡도 리듬도 모두 연주 그것에 녹아들어 하나로 어우러진다.
그리하여 '나'는 깊은 바닷속처럼 고요 속에 머물고,
그때 그대는 신의 완전한 조화를 저절로 비춰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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