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4장(6)
나는 라사로 가는 무역로를 벗어나 반대의 방향으로 티벳과 부탄을 갈라놓는
히말라야 산맥의 뒷면을 더듬어 가는 것입니다.
길은 나 있다고 하지만 겨우 사람이 밟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소로이고
그나마 흔히 산사태가 나기 때문에 위험한 곳이 많다고 합니다.
이 지방에는 설표(雪豹)라는 호랑이와 늑대의 트기 같은 맹수도 출몰합니다.
굉장히 빠른 발과 단단한 몸으로 주로 산양을 잡아먹으며
험하고 후미진 곳에서는 사람도 덮친다고 합니다.
우리도 실지로 설표 두 마리를 보았지만 아주 먼 거리여서 별 탈은 없었습니다.
평원을 이동하며 사는 유목인들은 몸집이 큰 개를 많이 길러
양 떼를 그 약탈자로부터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고장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하는 장터가 있는 게린이라는 곳에서
물살이 거센 아모츄 강을 건넜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화폐를 쓰는 일이 별로 없고
대개 물건들을 서로 맞바꾸어 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장터를 가로질러 챰비 계곡의 하단에 있는 샤리상이라는 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야툰은 챰비 계곡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라사로 가려면 왼쪽으로 꾸부러지지만 우리는 오른쪽으로 꾸부러져들었습니다.
오뉴월 초여름철에는 챰비 계곡은 야생의 꽃들로 뒤덮입니다.
산허리에서 골짜기 끝까지 만개한 진달래가 뒤덮고
빨강, 분홍, 하양, 보라, 온갖 색깔이 그 한 폭의 그림을 펼치고 있습니다.
진달래나무의 무리가 골짜기 바닥까지 뻗어 나온 끝에는 커다란 양귀비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줄기의 키가 다섯자나 되고 꽃은 지름이 적어도 다섯 치는 될 것 같습니다.
화판은 끝에 분홍색이 감도는 노랑이고 시선을 끌어당기는 요염함이 있습니다.
나는 통역에게 말했습니다.
"런던이라면 이만큼 있으면 한 밑천 단단히 잡을 터인데 여기서는 이렇게 널려 있는데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이군."
계곡의 바닥에는 봉선화, 용담, 참제비고깔 등의 식물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제약 원료로 많이 쓰이고 있는 풀들, 특히 여러 가지 염증의 소염제로 쓰이는 귀한 약초들이
얼마든지 자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호메오파티(Hmpeopathy, 同種療法)에서 아주 귀하게 쓰이는 아코니틴(Aconitin),
뛰어난 영양제, 건위제인 용담까지 이 외부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후미진 곳에
마음만 먹으면 화물차로 몇 차라도 실어갈 수 있을 만큼 널려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계곡을 빠져 나오자 거기서부터는 길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울퉁불퉁한 벼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어떤 곳은 폭이 두 자도 채 못 되는 곳이 있고, 그런 길 아닌 길이
허츄 강으로 내리 꽂히는 3백 미터도 넘는 깎아지른 벼랑 끝을 따라 나 있었습니다.
한 지점에는 길 위로 튀어나와 있는 바위 밑을 지나는데
바위 크기는 몇천톤이 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일부러 그 밑을 몇 번 가고 오고 해보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엄청난 바위 덩이가 가파른 벼랑에서 툭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데도 산허리에 그대로 붙어있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아무래도 언젠가는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몇백 미터 낭떠러지 아래 강물 속으로
처박히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간신히 간신히 기어올라 겨우 고갯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아득히 저멀리 원츄 계곡이 바라보였습니다.
눈 아래는 허존이 보이고 산허리 여기저기에 승원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린포체 대사의 말씀대로 그렇게 여러 승원이 한자리에
바싹바싹 다가서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고개를 내려가기는 오르기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고개 아래는 죽 열려서 그대로 원츄 계곡에 이어져 있고 그 한가운데를 허츄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는 조랑말을 탄 한떼의 티벳인들과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정말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짐작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저 작자들은 마적떼 같은데?" 하고 나는 호위역에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인원수가 우리 일행의 다섯곱은 되었습니다.
그들은 차츰 거리를 좁혀 오면서 은근히 우리를 포위했습니다.
이쪽에서 먼저 싸움을 걸거나 허둥대기를 기다리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이쪽에서 쳐들어간다는 것은 곧 자살행위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뭔가 위기를 넘길 수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어 그다지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의 도적들은 마적행위를 신사적인 직업으로 여기고 있고
다른 '직업'을 오히려 경멸한다는 것입니다.
바짝 조여든 그들은 그저 얌전히 있는 우리들의 짐을 들추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짐과 소지품 그리고 말까지도 몽땅 약탈해버릴 모양입니다.
그러나 어찌해볼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는 나 자신의 의안(義眼) 생각이 났습니다.
티벳 사람들은 거의가 미신을 철저히 믿으며 괴상한 신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신들 가운데는 살결이 희고 눈이 하나뿐인 신이 있는데,
그 신의 노여움을 사면 무서운 재앙, 때로는 죽음까지 당하게 된다고 그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그 신들의 노여움을 달래려고 정기적으로 온갖 물건을 제물로 바치고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느닷없이 마적들 사이로 헤집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청을 돋우어 티벳말로 '땅이 깨어져 지옥이 열릴지어다.'하고
엄포를 놓으면서 눈에서 의안을 빼어 손바닥 위에 놓고
그들 하나하나의 코끝에 내밀어 보이고는 다시 의안을 눈에 끼웠습니다.
그때의 그들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습니다.
갑자기 당한 일에 눈이 뒤집히더니 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손에 들었던 것을 내팽개치고
말에 오르기가 바쁘게 도망을 쳐버렸던 것입니다.
어찌나 급하게 말을 모는지 자욱한 흙먼지에 그들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유리알 하나로 그렇게 얼이 빠진 꼴을 보고
우리는 한참을 배를 쥐고 웃었습니다.
한참을 달려가던 그들이 아주 멀리서 잠시 멈추어 서더니
그로부터 두 번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에 몸이 하얀 신이 산을 넘어 원츄 계곡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티벳 사람들을 통하여 들었는데 아마도 그들은 우리를 가장 무서운 외눈박이 신으로
완전히 믿어버렸던 모양입니다.
이 의안의 비밀은 우리는 절대로 새어나가지 않게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신비로운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하얀 신'의 위력을 한층 더 높여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길을 더듬어가던 도중 한 청년이 산허리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다가
어깨의 뼈가 빠져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뼈를 별로 어렵지 않게 맞추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음하고 있는지가 반 시간이나 된다고 했는데,
나의 치료로 그 청년은 당장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하얀 신'의 평판이 한층 높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뒤에 린마톤으로 돌아갔을 때 린포체 대사가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이 나라에 온 지가 얼마 안 되는데도 벌써 나보다도 유명해졌더군."하고 웃기까지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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