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9장(7)
성 안토니는 특히 치병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이는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치병가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이는 그이 자신보다도 높은 존재들의 지시를 받아 여태까지
불가시의 세계로부터 나를 도와줬으며, 내가 다시 세계로 돌아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도와주도록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 안토니의 치병에 관한 말은 특별히 나를 위해 하신 말이었습니다.
그 영교의 모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완벽한 방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열 명 이상의 스승들이 그 방안에 나타나셨는데 한 분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는 동안은
어떤 사람도 그 이야기 속에 끼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안토니 성자가 나에게 준 말은 나로서는 최대의 관심사였습니다.
전에도 나는 이 성자에게 이야기를 한 일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완전한 방법으로 대화한 적은 없었습니다.
안토니 성자는 말씀하십니다. "신은 사람의 아들을 거쳐 영광을 받으신다."
이 말의 뜻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에도 이와 같은 말을 해 주신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토니 성자는 마치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곧바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병을 고치는 힘과 진리를 전해주는 힘을 누구나가 타고난다.
신유(神癒) 가운데에는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만도 하다. 그 때문에 회의가 생기고,
신유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다는 생각에서 그러한 놀라운 치유의 본질을 부정하려는
온갖 시도가 있어 왔던 것이다. 신유는 어떠한 물질적 방법을 써보아도 낫지 않는 질병에
놀라운 효과를 눈으로 보게 해 주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거대한 영의 힘에 아직도 눈뜨지 못했다.
그 까닭은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을 넘어선 세계에까지 미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마음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나, 이론을 알지 못하는 것이나,
이론을 넘어선 것은 규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유가 일어나는 것은 실로 그와 같은 영역에서이다."
"그렇습니다. 말씀대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체 신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그다지도 완전하게,
더구나 순간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가 있는지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 이 신유를 진리가 아니라 단지 관념밖에 주지 못하는
한낱 술어(述語)로서 써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하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안토니 성자는 다시 말씀을 이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현상이든 모두가 스스로 지혜 있는 법칙에 의하여 나오는 것이며
그렇지 않고는 현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가령 자네가 어떤 일을 두려워하거나 또는 무엇인가를 믿고 있으면,
거기에 어떤 크나큰 지혜가 작용하여 자네가 두려워하거나
또는 믿고 있는 그것을 바로 만들어내고 만다.
이것이 상념의 법칙 내지 전자작용(電磁作用)의 법칙이다.
육체는 에너지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짜임새의 운동은 모두가 전기적인 것이다.
진리는 수학과 같으며 어김이 없다.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으면 그 잘못은 사라지고 만다.
2+2가 왜 4이고 5가 아닌가? 그 이유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진리를 따지거나 시험할 수 없다. 수리 자체를 따지거나 시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다만 잘못을 따지고 조사할 수 있을 뿐이다.
진리는 수학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옳고 항상 절대이며 변화하지 않고 따라서 잘못이 생길 수 없다.
바로 신유가 항상 완전한 이유이다.
인간은 자신의 둘레에서 작용하고 있는 여러 가지 법칙을 탐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법칙들까지도 인간의 정신 너머에 있는 탐구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자네를 둘러싸고 있는 혼란의 원인은 그 밑바닥에 있는 생명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러한 어리석음 때문에 훌륭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까지도
인간 그것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생명의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수학의 법칙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진리와 진리의 법칙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진리의 법칙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리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오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만을 알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진리는 수학을 다루고 이용하듯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다.
조화된 음악에는 참된 음계가 있지만 거기에는 그릇된 음계라는 것은 없다.
그릇된 음계라는 것은 다만 잡음일 뿐이며 그런 것은 조화가 아닌 것이다.
부정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람도 없다. 그릇된 것, 가짜를 부정하는 것은
바로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며 본래 있지도 않은 실재성을 부여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런 가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아버리면 그것이 가짜인 까닭을 아는 것이요,
사람은 그 때 비로소 가짜가 진짜, 곧 '참(實相)' 속에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 자아(自我),
곧 미망이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는다.
가짜는 오직 미망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진짜 곧 '참'의 조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가짜는 '자아'에 달라붙으려 한다.
왜냐하면 가짜가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자아'뿐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나'의 힘 같은 것은 결코 내세운 적이 없었고,
'언제나 내 안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일하신다.'라고 했다.
그이는 자기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이는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하셨다.
자네가 힐러(治癒家)라는 간판을 내걸고 '나는 신유로 병을 고쳐준다.'고 하거나
'나는 예언자이다.'하고 광고한다면, 자네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현상적 존재로 한정하고 말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수많은 실패자가 속출하게 된 원인이다.
자아는 '신성(神性)인 것'을 뒤덮어 감추어버린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아를 벗겨내고 떨쳐버려야 한다. 자아는 아무 힘도 없는 허상이요, 무(無)다.
이 깨달음이 빨리 오면 올수록 자네 자신과 자네에게로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에게이익이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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