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 명상, 마음공부] 히말라야를 넘어서 9장(9)
나는 성자가 말해주는 것에 몰두해 있어 주변의 일에는 전혀 주의를 돌리지 못했습니다.
성자는 말을 이으셨습니다. "병이 시작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자기 존재의 진리 곧 '참 나는 완전, 무한, 절대'라는 자각이 마음에서 사라지고
불건강이라는 의식이 마음을 지배하여 쾌활함과 생동감을 잃는 것이다.
그때까지 육체를 지탱해 오던 마음이 '병이 실제로 있다.'는 미망의 마력에 굴복하여
진리가 한 때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이 지닌 한 얼(大靈)의 종주권(宗主權)에 관한 식을
부조화, 혼란이라는 세력에 내어 주고 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마음이 그 엄연한 주권을 포기하는 꼴을 줄곧 생생하게 보아온 사람으로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어떻게든 회복하려고 약재(藥材)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반대로 어쩌다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 회복의 기미가 보이면
결과적으로 약재의 힘을 완전히 미신(迷信)하게 된다.
그러다가 병의 상태가 다시 나빠지기라도 하면 완전히 미신하고 있었던 만큼 혼란은 더욱 커지고,
끝내 믿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그대로 절망과 공포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육체는 화학 작용의 구성물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깊이 알아야 한다.
육체에는 지혜와 기능과 육체의 영위를 유지하는 놀라운 짜임새가 갖추어져 있으며,
그것이 곧 대생명의 활력이고, 그 대생명의 활력이 육체의 운동과 변화를 일으키는 바탕이다.
약초나 생약, 호메오파디(同種療法), 수치료법(水治療法)등의 자연요법은
대개의 경우 세포에 작용하여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그것이 강력한 암시가 되어
그 암시에 따라 마음이 작용하게 된다. 마음에 미치는 이런 작용이
결국 건강 의식과 몸 속의 균형, 조화를 회복시키고 재생시키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내재(內在)의 영력(靈力)의 법칙을 깨닫지 않은 상태에 머문채로이면,
다음에 오는 2차적 상태는 처음의 그것보다 더 나빠지기 일쑤이다.
병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자아 뿐인 것이다.
얼은 병이라는 것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 이기심, 빼앗고 받기만 하는 마음,
탐욕, 미움, 적의, 인색, 완고, 난폭은 자아의 것이며, 이것들이 거의 모든 병의 원인이다.
비인격적이며 치우침 없는 한 얼은 그런 부덕(不德)에 대하여는 아는 바 없다.
따라서 치우침 없고 비인격적인 것이 신유이다.
비인격적으로 되면 될수록 사랑이 깊어지고 친절해진다.
왜냐하면 사랑은 비인격적인 것이며, 사랑은 용서요 치유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신이며, 사랑은 무릇 반작용이 따르지 않는 완전한 작용의 바탕이다.
개체의 자아가 끊임없이 외적인 것, 충돌과 갈등, 내면 및 외면에서의
투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을 깨달았음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비인격적 내재 진아(非人格的 內在 眞我)가 해방되어
대생명의 모든 힘이 방사되며, 그 자연의 힘의 전자파가 마음과 육체를 변질시키기 시작한다.
이 안에서의 원자 작용이 잠재 의식층에 대해 암시를 준다.
그러면 잠재 의식은 순간적으로 온몸에서 반응이 일어나게 하여
강력한 체에너지의 흐름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아
그 흐름이 향하는 곳에서 불순한 것을 밖으로 쓸어내고 혼란을 가라앉힌다.
이 혼란이 가라앉는 것에 호응하여 '병'이라는 관념을 떨쳐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만 참된 평안이 확립되며,
그리하여 육체의 호소와 반란이 멎고 조화가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앎으로서 다시 조화가 회복되면,
마음과 육체는 병의 성질이나 증상의 계속 기간 여하에 관계없이 변화한다.
진리에 따라 이끌어줌으로써 병자는 고통이 한 때의 것이고 스스로 지어낸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무릇 나타나는 현상은 한 때의 것이며, 한 때의 것은 그저 끊임없이 유동하고
그 자체의 근거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밖의 무엇인가에 사로잡히는 것은 무지한 자아 뿐이다.
실재는 이 무지한 자아와는 전혀 다른 것. 실재야말로 완전하고 비인격적인 참 나이다.
만약 병이 실재라면 그것은 고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재는 불변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공포를 품고 있기 때문에 남들이 뿜어내는 암시를 받아 공포 속으로 더욱 깊이 빠진다.
죽음에의 공포는 인류라는 한 가족에 스며있는 여러가지 괴로움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이 공포를 떨치는 것이 가장 중대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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