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을 지키게 하고 그 직무를 충실히 완수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이병, 곧 두 개의 자루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병이라 함은 형벌과 은덕을 말합니다.
형벌과 은덕이란 무엇인가? 죽이는 것을 형벌이라 하고,
공 있는 자에게 상주는 것을 은덕이라고 합니다.
신하 된 자는 모두 형벌을 두려워하고 상 받는 것을 즐거워하기 마련이므로,
군주는 이 일을 남에게 맡기지 말고 자신이 직접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신하들은 그 위엄을 두려워하여 죄를 피하고
은상을 입고자 각자의 직무에 힘쓰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간신, 즉 권세를 움켜쥐려는 신하는 그렇지 않아서,
자기가 미워하는 자가 있으면 군주를 기만하여 그를 벌주고,
자기가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군주를 미혹하여 상을 줍니다.
그리하여 벌주는 위엄과 상주는 이로움이 군주에게서 나오지 않고
신하가 뜻대로 처리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신하를 두려워하고
군주를 가볍게 여길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 신하에게로 모이고, 군주를 저버리게 됩니다.
이로써 군주는 형벌과 은덕을 잃어버리는 폐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호랑이가 개를 능히 굴복시키는 것은 호랑이에게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호랑이의 그 발톱과 이빨을 제거해 버리고 개에게
그와 같은 발톱과 이빨을 준다면, 호랑이는 도리어 개에게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곧 군주도 이와 마찬가지로 형벌과 은덕을 가지고 신하를 제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군주가 그 형벌과 은덕을 버리고 신하로 하여금 이를 쓰게 한다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에 의하여 제어당하고 맙니다.
옛날 제나라의 전상이라는 신하는 임금인 간공에게 청하여
관작과 봉록을 자기 뜻대로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래로 백성들에게는 말의 크기를 별도로 만들어 곡물을 넉넉히 주어
선심을 베풀었습니다. 그리하여 간공은 덕을 잃었으며,
결국 신하의 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한 가지 실례를 들어보면, 송나라의 대부 자한은 군주에게 말하기를,
'사람들에게 상을 주고 높은 지위를 주는 것은 아랫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바이므로
군주께서 손수 행하십시오. 사람을 죽이는 형벌은 백성이 미워하는 바이므로
신이 행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리하여 송군은 형벌을 내리는 힘을 상실하고 자한이 대신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송군은 자한에게 위협을 받아 정권은 자한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상의 예로 보면 간공은 단지 덕을 행할 권한만을 넘겨주었는데도
전상에게 죽임을 당했고, 자한은 다만 형벌만을 행사했는데도 송의 군주는
위협을 받아 정권을 빼았겼습니다.
따라서 만약 신하 된 자가 이 두 가지를 모두 자기 손에 넣는다고 하면
그 군주의 위태로움은 간공이나 송군보다도 더욱 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협을 받거나 시해를 당하며, 임금의 눈과 귀가 가리어지고 막히니,
이와 같이 임금이 형벌과 은덕의 권한을 잃고 신하에게 대신 행사하게 하고도
국가가 멸망하지 않은 예는 아직까지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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