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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귀한 자와 천한 자의 신분의 한계가 명백히 정해져 있으면

낮은 자가 그 분수를 넘어 위에서 하는 일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며,

어리석은 자나 지혜있는 자가 서로 도우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상태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작록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을

쉽게 생각하며 군주를 선택하는 자가 있는데,

그러한 신하는 결코 청렴한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신 한비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자는 나라에 해가 되는 존재이다.

신하로서 힘을 다하여 공을 세워 은상이 내리면 기쁘게 그 은상을 받고,

자기의 의견이 실행되어 관직을 주면 기꺼이 취임하여

그 직무를 완수함이 나라를 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를

일컬어 세상에서는 청렴하다고 하는데, 실은 반드시 배척해야 하는 인물이다.)

 

말을 꾸미고 거짓을 말하여 속이며 국법에 맞지 않는 일을 멋대로 주장하고,

또 군주의 의향과는 달리 굳이 간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를 세상에서는 군주의 결점을 기탄없이 지적, 간언 한다고 하여

충의의 선비라고 칭찬하지만, 실은 결코 충성스럽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신하로서 은밀히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은혜를 베풂으로써

아랫사람의 인망을 거두어 세간의 칭찬을 받는 자가 있는데,

이러한 자를 인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세속을 떠나 은거하면서 군주를 비방하는 자가 있는데,

이러한 자를 의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밖으로는 제후와 친교를 맺고 안으로는 국력을 소모하다가

망국의 위기가 닥쳐오면 기회를 엿보아 군주를 위협하기를

'내가 아니면 외국과의 친선을 도모할 수 없고,

또 원한도 내가 아니면 풀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군주가 그 말을 믿고 온 나라의 운명을 그의 손에 맡기게 되면,

그는 군주의 명예를 손상시켜 자기의 명예를 높이고 국가의 재물을 훔쳐

자기의 집을 이롭게 합니다. 그러한 자를 세간에서는 지자라 할는지 모르지만

결코 지혜롭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상 열거한 일은 모두 험난한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일로서,

밝은 임금이라면 반드시 배척해야 할 바입니다.

 

옛날의 명군이 세운 법도에 의하면, '신하로서 강한 세력을 구축하지 말고,

사리를 도모하지 말며, 악을 짓지 말고 임금의 방침에 따르라'고 했습니다.

 

옛날의 잘 다스려진 세상의  백성은 국법을 지키고,

사술(자기 한 사람의 생각으로 사물을 결정함)을 삼가고,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재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며,

오직 군주의 임용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아무리 현명하다 하더라도 군주 한 사람만의 힘으로

모든 일을 지휘할 수는 없습니다.

또 군주가 홀로 백관의 행위를 관찰하려면 시일도 부족하거니와 힘도 모자랍니다.

 

만약 군주 된 사람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몸소 지시를 하게 된다면

아랫사람은 군주의 안색만 살피고 표면만 적당히 꾸밀 것이므로

실정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또 군주된 사람이 귀로 들은 것을 기초로 하여

만사를 처리하게 되면 아랫사람은 소리를 꾸밀 것입니다.

 

또 군주 된 사람이 사물을 면밀히 살피려고 한다면 아랫사람은

말을 많이 하여 군주의 판단을 그르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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