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5. 이병(3)

 

임금에게는 삼가야 할 두 가지 근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을 뽑아 쓰는 것인데, 세상의 비평을 드고 쓸모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요직에 등용하면 그는 장차 자기의 현명함을 이용하여 임금을 위협하게 됩니다.

 

둘째는 군주라고 하여 함부로 사람을 등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이 침체되고, 능력도 없는 자가 높은 지위에 앉게 됨으로써

 그 직분을 견디지 못할 사람들이 많아지며 능률이 오르지 않게 됩니다.

 

만약 군주가 현명한 자를 좋아하여 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에 앉히고

후히 대하면, 신하 된 자는 세상의 호평을 얻을 목적으로 자기 행실을 꾸며서

군주에게 영합하려고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가 군주의 신용을 얻어 중용되면 신하들의 본심이 드러나지 않게 되고,

신하가 본심을 드러내지 않게 되면 군주는 그들의 참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월왕이 용맹을 좋아하자 백성들 중에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자가

많이 나타났고, 초나라 영왕이 허리 가는 미인을 좋아하자 나라 안의 여자들이

영왕의 마음에 들고자 다투어 밥을 굶었습니다.

 

제나라 환공은 질투심이 강하고 여색을 좋아했습니다. 그러자 수조라는 자는

스스로 거세를 해버리고 내기가 되었습니다.

(환공은 명군이기는 했으나 이 방면에 결함이 있었다. 수조는 비록 불구는 되었지만

소망대로 궁중에 들어가 환공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훗날 내란을 일으켰으니

환공은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이 된 것이다.)

 

 

환공은 미식가로서 맛있는 음식을 좋아했으므로

역아는 자기의 장남을 삶아서 바쳤습니다.

(환공은 진귀한 맛이라고 하여 매우 기뻐하며 이후로는 역아를 중용했는데,

후일 역아도 내란을 일으키는 한패가 되었다. 이렇듯 명군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좋아하는 바를 가볍게 나타내면 그 폐해가 큰 것이다.)

 

연나라 자쾌는 현인을 좋아했습니다. 자지라는 대부는 스스로 무욕하고

청렴결백한 것처럼 가장하여 주군을 안심시킨 다음,

옛날의 성군 요순은 왕위를 덕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었다고 충동질했습니다.

 

그러자 자쾌는 비록 나라를 넘겨주더라도 어진 자지는 받지 않을 것이고

또한 자신이 요순과 같은 성군으로서 칭찬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많은 신하 앞에서 '자지는 덕 있는 선비'라고 하며 자기를 대신하여

연나라 왕이 되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자지가 이것을 수락할 리 없으리라고 단정한 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자지는 왕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양하지 않고

양위를 고맙게 받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자쾌는 자지의 계략에 빠져 왕위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볼 때 나라를 받지 않겠다는 자지의 말을 믿었던 것이

그 과실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