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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하) 한비는 결코 의견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저하며 경솔하게 말하지 않는 것은 듣는 쪽에서

확고한 태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한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듣는 쪽에서 오해한다든가 혹은 지나친 비약을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공들여 열심히 말한 것도 듣는 이의 마음속에

스며들지 못하는 폐단이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말이 상대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고 유창하며 질서 정연하고

조금도 어지럽지 않을 때는 그럴듯하여 재미는 있지만,

마치 꽃은 피워도 열매를 맺지는 못하는 격으로 실속이 없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말을 지나치게 잘하기 때문에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데 난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유창한, 혹은 순서가 정연한 말은

도리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 내용이 견고하여 빈틈이 없고,

어느 모로 보아도 결점이 없는 말은 옹졸하고 조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치는 그럴듯하지만, 아무래도 좀 졸렬한 표현이므로

이 또한 쉽사리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좀 더 조리 있게 듣는 사람이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지나치리만큼 재치가 없다는 비난을 받으며,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말에 꾸밈이 많고 옛사람의 말을 많이 인용하며 사례를 잇달아 들어

다른 것과 비교하여 말하면 듣는 이로서는 알기 쉽지만,

이는 내용이 공허하여 실용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정성 들여 설명을 했어도 듣는 사람은

모든 말을 신용하지 않는 결과가 됩니다.

 

이와 반대로 대체의 요점만을 말하고 소상한 것은 말하지 않는,

말하자면 골자만 간추려 다짜고짜 본론부터 시작하며 그 이외의 설명은

모두 생략하고 말을 꾸미지 않는다면 이 또한 유쾌하게 들릴 리가 없습니다.

 

이렇듯 말이 지나치게 솔직, 간략하면 결국 듣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게 되며,

화술이 빈약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또 듣는 사람의 마음을 잘 살펴 그럴듯하게 설명하면,

상대방은 자기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본다고 생각하여 도리어 불쾌감을 갖고,

건방지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군주의 심중을 헤아려 말할 때에는

자칫 불손한 자로 오해받기 쉬우므로

좀 더 예의를 갖추고 공손한 태도로 설명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범위가 넓은 여러 가지 고금의 사실을 늘어놓는다든지,

혹은 여러 가지 학설을 말하여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깊고 오묘하여 헤아릴 수 없다면

듣는 쪽에서는 말이 과장되어 있을 뿐, 실용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힘들여 설명을 하더라도 그 말은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

 

변설이 민첩, 비상하여 자질구레한 말까지 논의하고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설명할 경우에는 곧 졸렬하고 야비하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자상하여 적절하기는 하지만 너무 얕아서 심오한 맛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신경을 써서 들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 세속적인 것만 말하고, 그 말이 패악하거나 불손하지 않아

남의 비위에 거스르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 들어도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일만을 설명한다면

그는 남다른 이상도 없고, 또 견식도 없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단지 자기의 생활을 풍족하게 하기 위하여 위에 아첨하고

그럭저럭 일생을 즐겁게 지내면 된다는 식의,

극히 속된 생각을 지닌 사람으로 간주되어

상대방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또 변설에 능하여 누가 들어도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고,

그 말에 꾸밈이 많아 사람이 들어서 기분 좋은 소리만 주로 설명하여 나간다면,

마치 사관처럼 말 많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게 될 것입니다.

 

또 일체의 꾸밈을 버리고 외골수로 말을 엮어 진지하게만 설명하면

야비하여 조금도 우아한 맛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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