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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이나 서경에 있는 옛 성현의 말을 인용하고

무조건 그 가르침을 본받아야 된다는 식으로만 설명해 나간다면

그 사람은 단지 옛일을 외우고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많은 것을 알고는 있지만 지금 세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만을

말하고 있는 꼴이 됩니다.

이것이 신 한비가 함부로 말함을 두려워하고, 어떻게 하면 나의 진정이

받아들여질까 하고 항상 근심하는 이유입니다.

 

마치 저울이나 자로 재듯이 한치의 착오도 없이 설명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말이 채용되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도리상으로 말하면 조금도 결점이 없는 변설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쓰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군주된 사람이 밝지 못하여 진정으로

그 나라를 위하는 사람의 말이라 할지라도,

이상과 같은 이유로써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설득자의 몸에 화가 미칩니다.

 

그는 적어도 남의 참소를 받을 것이며, 잘못하다가는

재해와 근심이 미치어 그 몸이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오자서는 나라를 위하여 숙고 끝에 좋은 의견을 진언했으나

도리어 오나라의 군주 부차의 노여움을 사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공자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도를 설파했지만

광나라 사람들은 그를 포위하여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관중 역시 현명했으나 노나라 사람은 그를 감금했습니다.

곧 오자서나 공자나 관중이 어찌 어질지 않았겠습니까마는

오의 군주, 광나라 사람들, 노나라 군주라는 사람이 밝지 못했던 까닭에

이러한 재난을 당했던 것입니다.

 

옛 은나라의 시조 탕왕은 지극한 성인이었으며,

이윤이라는 재상은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이 최고의 지자가 최고의 성인인 탕왕을 설득하여

그 뜻을 펴보려고 했으므로 당장 상통했을 법한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이윤은 70회에 걸쳐 설득했지만, 탕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윤은 할 수 없이 요리 솜씨를 익혀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 접근하자,

탕왕은 그제서야 겨우 현자임을 알고는 그를 등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지혜로써 지극한 성인을 설득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설득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이윤이 탕왕을 설득한 것이 그 예입니다.

 

하물며 자기에세 지혜가 있다손 치더라도 상대가 어리석은 왕이라면

그 왕에게 자기의 참뜻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문왕이 은주왕을 설득하려고 한 것이 그 한 예입니다.

 

문왕은 주왕에게 진언했으나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잡아 가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왕은 지극히 포학하여 많은 현자를 의심하고 미워하며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 예를 들면, 익후는 화형 시켜 죽이고,

귀후는 죽인 후에 그 시체를 볕에 말려 미이라를 만들어,

죽은 후에까지 치욕을 주었습니다.

 

또 비간이라는 충신은 주왕에게 직간을 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심장을 도려내는 형벌을 받았고, 매백도 왕에게 간했다가

소금에 절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관중은 새끼줄에 묶여 매우 학대를 받았습니다.

 

조기는 조나라 충신이었지만, 군주가 서융과 싸우려는 것을 간하다가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군자의 길은 세 번 간하여 채용되지 않으면

떠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하여 진나라로 달아나 자기 몸을 구했습니다.

 

또 백리자(백리해)는 세인들마저 그의 지혜를 알아주지 않자

길에서 구걸을 하며 연명했습니다. 또 부열은 노예가 되어 팔려다니다가

은나라 고종에게 발견되었고, 저 유명한 손자는 위나라에서 다리를 베였으며

오기는 안문에서 슬피 울며 그가 지키던 서하가 진나라 땅이 될 것을 통탄했습니다.

그러다 끝내는 초나라에서 죽임을 당하여 몸이 토막나고 말았습니다.

 

공숙좌는 그의 임종에 찾아온 혜왕으로부터 나라의 재상이 될

그의 후계자를 천거하라는 의뢰를 받고 공손앙을 추천했으나

병으로 그이 머리가 돌았다고 취급되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손앙은 진나라로 달아나야 했습니다.

 

또 관용봉은 목이 베이고, 장홍은 죽어 창자까지 잘렸으며,

윤자는 가시덤불 속에 던져지고, 초나라의 사마자기는 죽어서 강물에 띄워지고,

전명은 못박혀 죽었으며, 공자의 제자인 복자천과 위나라의 서문표는

싸워보지도 못한 채 남의 손에 죽었고,

동안우는 죽임을 당하여 길바닥에 던져졌으며,

재여는 제나라의 전상의 내란에 말려들어 죽임을 당했고,

범수는 고문으로 말미암아 위나라에서 갈빗대가 부러졌습니다.

 

이상 열거한 많은 사람들은 모두 인덕을 갖춘 충실한 신하요,

생각이 뛰어난 선비였으나, 불행하게도 도에 어긋난 어두운 군주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뜻을 펴보기는 커녕 도리어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로 볼 때 성현이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며, 혹은 다행히 죽임을 당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치욕을 모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어리석은 자를 설득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군자는 말함을 두려워하여 경솔하게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사람의 충심에서 우러난 말은 귀에 거슬리고,

들으면 마음이 유쾌하지 않게 마련이므로

지극히 어진 임금이 아니면 바로 듣지를 못합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이를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 오자서 : 그는 오왕 부차의 신하로서,

월나라는 장차 오나라의 근심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바가 있어

서둘러 월왕 구천을 공격, 멸망시켜 오나라의 근심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왕 구천은 이를 눈치채고 여러 가지 책략을 써서

오의 재상 비에게 오자서를 이간질했으므로,

그는 충심으로 나라를 위하여 건의했으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리어 군주 부차의 노여움을 사서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오자서는 죽을 때에 '장차 이 오나라는 멸망할 것이다.

내가 죽거든 내 눈을 빼내어 왕궁의 동쪽 문에 걸어두라,

이제 월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침입해 와서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리라'고 말하며 대단히 분개했다고 한다.

과연 그 말대로 9년 뒤에 오나라는 월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공자 : 공자는 용모가 노나라 대부인 양호와 비슷했으므로

광나라 사람들이 양호인 줄 알고 포위하여 괴롭힌 일이 있었다.

양호는 그 세력을 믿고 소국인 광나라에 많은 탄압을 가했으므로 

광나라 사람들은 양호를 매우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오해가 풀려 공자는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관중 : 제환공 밑에서 재상을 지낸 사람이다. 처음에 그는 매우 불우했다.

그는 처음에는 공자 규를 섬겼는데, 노나라에서 공자 규를 잡아 죽였다.

그때 관중은 공자 규의 신하였으므로 죄인으로 몰려 제나라에 송환되었다.

이와 같이 관중 같은 사람도 자기의 참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반드시 재난을 당하는 것이다.

 

*문왕 : 문왕은 성인이라 일컫는 사람이었지만 주왕은 대단한 폭군이었다.

문왕이 주왕의 잘못된 점에 대하여 간하고 설득하자

주왕은 도리어 그를 붙잡아 가두었다고 한다.

 

*익후 : 구후와 같은 인물이다. 자기 딸을 은나라 주왕에게 첩으로 바쳤으나,

그 첩이 주왕의 뜻에 거슬리는 말을 한 탓에 노여움을 사서 끝내는 죽게 되었다.

 

*손자 : 손빈을 말하는데, 병서로 유명한 손자 손무의 후손이다.

그는 제나라의 군자가 되어 위를 타파하는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처음 위나라를 섬겼으나 그 동문인 방연의 모함에 의하여

나라에 해를 끼칠 인물로 간주되어 발목을 잘리는 형을 당했다.

뒷날 제나라 군사가 된 손빈은 뛰어난 계책으로 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위군의 총대장인 방연의 목을 베었다.

 

*오기 : 손자과 비견되는 유명한 병서의 저자로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오자라 한다.

오자는 위나라 무후를 섬겨 진력했다. 그가 서하 땅을 지키고 있던 당시

급히 위나라로 소환되어 안문에 이르렀을 대의 일이다.

그가 안문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눈물만 흘리자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이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내가 명을 받고 소환되어 가지만, 만약 내가 가고 없으면

서하는 반드시 진나라에 의하여 점령되고 말 것이다.

이 일을 생각하니 너무도 원통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는구나.'

그는 이렇게까지 위나라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려 했으나

위왕이 끝내 그의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초나라로 달아나 도왕을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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